12년 전에 쓴 기사 스크랩을 펴 본다. ‘口足화가 6인전’이라는 문화면 머릿기사다.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거나 양팔을 잃어, 입이나 발로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6명의 초대전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청작화랑에서 열린다. 극한상황을 딛고 일어선 젊은 화가들의 인간승리를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전하게 된다…> 작가는 김명기 김기철 안종현 김희정 한미순 오순이씨 등이다. 붓을 입에 물고 한국화를 그리는 김희정씨 사진 곁에 5명의 얼굴사진이 실려 있다. 큰 불행을 겪은 이들 같지 않게 모두 표정이 밝다. 엄격한 수련으로 자기를 이겨낸 얼굴들이다. 불의의>
▦ 김기철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군대서 전신마비 사고를 당했다. 김명기씨는 감전사고로 양팔을 절단했고, 김희정씨는 미 메릴랜드대 서울캠퍼스재학 중 추락사고를 겪었다. 공군사관학교 재학 시 추락사고를 입은 안종현씨는 유일한 기혼자였다.
방송통신대를 나온 한미순씨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됐고, 단국대 동양화과를 나온 오순이씨는 어려서 열차사고로 양팔을 절단했다. 협회 간부에따르면, 이들은 약간 예민한 이도 있으나 대부분 성격이 좋고 농담도 잘 한다. 그림 실력 또한 만만치 않았다.
▦ 그 전시회 이후 이들은 매년 정기 회원전과 개인전을 열어오고 있다. 당시 세계구족화가협회 한국지부 회원은 이들이 전부였으나, 지금은 21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카드나 달력, 복제화 등을 제작ㆍ판매해오고 있으니, 우리 일상과 문화에 기여한 바가 결코 작지 않다.
12일 오순이씨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단국대 과 수석으로 졸업했던 그가 모교 동양화전공 초빙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동양화 실기 시범강의를 해온그가 남다른 열정과 실력으로 학생과 교수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결과다.
▦ 오 교수는 14일 중국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도 받는다. 그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한 초등학교 때 이후 매일 5시간씩 그림에 매달렸다고 한다.
붓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기까지 허리가 끊어지고 발이 퉁퉁 붓는 고통을 참아낸 것이다. 장애를 딛고 한국화가와 교수로 우뚝 선 그가 아름답다.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그릴 수 있도록 가르치고 싶다”고 말했다. 미혼으로 그를 돌봐온 그의 언니 또한 따뜻한 사람이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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