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규제완화 공세를 높이고 있다. 경제침체로 정부와 정치권에 그 어느 때보다 규제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해외 순방에서 달라진 기업관을 거듭 천명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 기업적 발언도 재계로서는 백만대군을 얻은 듯 고무적이다.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11일 9개 부문 219건의 개혁안을 총리실 규제개혁기획단에 제출했다.
재계가 개혁 우선순위로 지목한 것은 입지·공장설립 등에 관한 규제.
재계는 공장부지가 3만㎢ 이상인 기업이 공장을 증설할 때나, 공장을 신설하는 기업이 인근 공장과 합쳐 총 공장면적이 3만㎢이상이 될 때 제출해야 하는 지구단위계획을 대표적인 개혁과제로 꼽았다. 계획서에 교통 환경 토목 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을 담아야 하는데, 작성기간만 8개월이 소요되며 그 비용이 1억원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재계가 규제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경제에 보탬이 되는 생산적인 기업활동까지 지연ㆍ 좌절되기 때문”이라며 “공장 증축 및 신축 규제부터 우선적으로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재정경제부가 열린우리당 정덕구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중소형 공장 1개를 지으려면 70여개의 규제에 직면하게 되고 1억5,000만원의 행정비용과 6개월의 행정절차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지조성비만 1억원, 사전환경성 검토대행 1,500만원, 도로확보 2,000만원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창업관련 규제는 제조업의 경우 입지 30건, 사업계획승인 21건, 공장건축ㆍ등록13건, 부담금 4건 등 전 분야에 걸쳐 68건에 달해 실제 창업까지 최소 180일이 걸리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계는 기업인들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현장 규제의 개선도 요구했다. 업무특성상 도로변 정차가 불가피한 택배 집배송 차량의 경우 10분 이내 주정차는 단속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속에서 빠지는 우체국 택배와 형평성에서 맞지 않다는 것이다. 재계는 또 플라스틱 용기의 1회용품 사용금지 때문에 중소 플라스틱 제조업체 350곳이 도산상태라며 규제철폐를 요구했다.
재계가 이처럼 규제개혁에 피치를 올리는 것은 현재 경제침체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가장 유력한 수단임을 정부와 정치권이 잘 알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국회와 총리실에 규제개혁단이 잇달아 구성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는 시각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를 일괄 정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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