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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노벨 평화상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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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노벨 평화상의 역설

입력
2004.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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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alternative) 노벨상이라고 일컫는 상이 있다. 스웨덴 의회가 노벨상시상 하루 전에 주는 바른 삶(The Right Livelihood) 상으로, 1980년 스웨덴 독지가가 노벨상은 인류에게 절박한 과제를 외면한다며 기금을 냈다.환경보호 빈곤추방 부패척결 등으로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데 이바지한 공적을 포상한다. 녹색사상가 노르베리호지, 평화운동가 페트라 케리, 우리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이 수상했다. 노벨상과 견줄 수는 없지만, 대안을 지향하는 뜻과 수상자의 면면은 조촐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올 평화상 수상자로 케냐의 여성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를 선정하자, 대안 노벨상을 주는 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제평화의 희망을 엿볼 수 없는 상황에서 마땅한 대상이 없어 환경운동가를 골랐다는 풀이다. 이런 시각은 평화상이 발표된 날,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의 악순환이 멈출 조짐은 없는 형편을 지적한다.

이날 이라크 팔루자에서는 미군의 공습으로 결혼 하객 11명이 숨지고, 테러조직에 인질로 잡힌 영국인이 참수 됐다. 이스라엘에서는 폭탄차 테러로30명이 희생됐고, 파리에서도 폭탄 테러로 10여명이 다쳤다.

또 현재 지구상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사태라는 아프리카 수단의 내전과, 국제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이란과 북한 핵 문제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환경을 평화의 주제로 삼은 것은 한가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물론 냉소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노벨위원회는 2000년대 들어 인류 미래에 긴요한 환경분야로 지평을 넓히겠다고 밝혔고, 그 의지를 실천했다.특히 환경 선진국의 선구적 운동가들을 제쳐둔 채 후진적 아프리카의 여성운동가를 선택, 환경과 평화의 과제가 직결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케냐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환경파괴는 땔감과 경작지를 얻으려는 인간의 생존욕구와 자연의 사막화가 주된 원인이다. 이는 땅과 물을 차지하려는 분쟁으로 이어져 평화와 인권을 유린한다.

수단 내전도 목초지를 찾는 아랍계 유목민들이 아프리카계 농민을 경작지에서 내몰기 위해 학살과 방화를 자행, 100만 명 이상이 생존을 위협 받고있다.

이런 상황에 비춰 환경운동 불모지에서 30년 동안 3,000만 그루의 나무심기운동을 이끈 마타이의 업적은 돋보인다. 더욱이 그가 여성인 점은 아프리카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의 역할과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값진 계기가될 것이란 기대다.

다만 이런 평가에 공감하더라도, 노벨 평화상이 갈수록 세계 평화질서의 현실과 멀어진다는 느낌은 떨치기 어렵다. 평화를 해치는 개별국가의 이기적 탐욕을 당장 어찌할 수 없다면, 미래를 향한 지평을 넓혀 희망을 북돋우는 것이 그나마 평화 의지를 간직하는 길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명망 높은 정치인만 조명한다고 비판 되던 노벨 평화상이 이제는 오히려 지나치게 조촐한 대안 운동에 주목하는 점이 지적된다. 그 결과 허망한 것으로 드러날 정치적 업적을 상찬하는 오류는 피할지 모르나, 현실의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적 과오에는 눈 감는 셈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아이러니를 피할 방도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올해 수상 후보였던 한스 블릭스 유엔이라크무기사찰단장은 평화를 위해 애쓴 공이 높이 평가된다. 전쟁을 막는 일은 애초 힘에 부치지만, 평화상 시상은 이기적 탐욕에겨운 전쟁을 꾸짖는 의미 있는 선택이 됐을 것이다.

물론 노벨위원회가 강대국 정치에 도전한 적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한갓 희망사항에 그친다. 여기서 유럽 언론은 다시 대안으로 세계대전 때처럼 평화상 시상을 포기하는 방안을 떠올린다. 그게 평화의 가치를 일깨우는 훨씬 강력한 메시지라는 얘기다. 이 모든 논란을 공연한 짓으로 여길 일이아니다. 그만큼 평화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세는 분명 배울 만 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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