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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0> 발로 뛰는 학자들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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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20> 발로 뛰는 학자들에 박수를

입력
2004.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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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새 저명한 원로 동식물 학자 몇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누구나 겪게 되는 자연의 이치이니 그저 돌아가신 분들의 업적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하지만 돌아가신 원로 동식물학자 분들을 바라보는 마음 한 구석에는 뭔가 다른 아쉬움과 답답함이 남았습니다.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등등 첨단 산업 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외쳐 되는 세상이 되었고, 물론 이러한 일들은 우리가 첨단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바이오산업의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니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원로 학자분들이 걸어오신 길은 첨단과는 거리가 먼, 식물 혹은 동물들이 왜 차이가 나는 지를 구명하고, 서로 다른 생태계의 원리를 밝히고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첨단 과학의 밑바탕 안에 발로 뛰며 모아진 그 분들의 땀이 어린 연구 결과들이 없었다면 그것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이러한 기본적인 일들은 뒤로 밀려가 그 분들의 자리를 채워줄 젊은 학자들이 너무 부족한 것이 우리의 허전함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멸절되지 않았나 염려되었던 매화마름이라는 희귀식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초에 식물분류학 교수님께서는 이 식물을 찾아내면 학점을 무조건 A+를 준다고 하셨던 바로 그 풀이지요. 처음엔 정말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귀한 자생지를 토대로 이 식물의 살아가는 특성과 사라진 이유들을 조사해보니, 바닷가 논이었고, 겨울에 물을 빼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정보로 다시 찾아보니 새로운 자생지가 여러 곳 찾아지더군요.

멸절을 걱정했던 식물이 다시 우리 곁에 나타난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니 이렇게 이땅에 존재하는 풀이 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최근 들어 전국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생태계 조사도 몇 차례 이루어졌는데도 말입니다. 이에 대해 이 식물을 찾으러 다니던 한 연구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식물이 최근 수 십 년 간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논이나 밭과 같이 자연성이 적은 생태계까지 뒤지고 다니던 식물학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덩달아 이 식물도 거의 사라진 것으로알려진 것이다”라고요.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식물을 다시 찾아서 알린 사람도 외래식물을 연구하던 분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의 간섭이 심한 곳만 찾아서, 그 것도 직접 발로 뛰며 다니던 분이었습니다.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이 늘었지만 직접 발품을 팔고, 이땅의 식물을 직접 찾아 기록하는 식물학자는 줄어든 것 같습니다. 식물의 계통을 연구하고, 이들의 유전적인 차이를 밝혀내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앞으로 그 식물들의 보전을 위해서나 혹은 이들을 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나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어떤 식물이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 가를 알아내는 일도 중요합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학자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도 이러한 일에 많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식물들에 대한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도 이들의 활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타계하셨거나 혹은 우리가 원로라고 부르는 분들이 하셨던 일 중의 일부나마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대신하고 있음에 마음속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곤 합니다. 비록 큰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큰 업적을 쌓는 일도아닌 일에 진심으로 식물을 사랑하여 동참하고,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을 부활시키는데 큰 힘을 보태고 있는 많은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박수를 드립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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