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 / 황인숙지음·이미디어 발행·9,000원*교양인의 책읽기 / 헤럴드 블룸 지음·최용훈 옮김 / 해바라기 발행 ·23,000원
마음으로 책을 권하는 일은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텍스트에서 느낀 바를 상대도 공감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니, ‘프로포즈’행위라우겨 볼만도 하다.
해서, 좀처럼 익숙한 사이가 아니라면 사뭇 조심스러워지는 게 책 권하는 일이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좋은 책을 권할 줄 아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황인숙 시인이 그 역(役)을 자청하고 나섰으니 고마울 따름인데, 그는 누구의 말처럼 “남 책 읽는 데 시간을 뺏겨 자기 원고 쓸시간을 못 챙기는 위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다시 그 마음들을’(이다미디어 발행)이라는 책에서 그는 한 시절“놀이의 대상이었고, 놀이의 또 다른 주체”였던 한 무더기의 책을 권하고 있다. ‘엉뚱한 책 읽기’라는 부제를 달아놓고는 그가 읽은 책의 행간에서 필자 자신이거나 그의 가까운 누군가를 읽고선 샛길에 빠져 앉아 해찰하기를 즐긴다.
도리스 되리의 소설집 ‘나 이뻐?’의 어떤 내용을 소개하다가, 연하의 노총각에게 마음 뺏긴, 그가 아는 한 중년부인의 이야기를 이어 놓는다. 여성의 삶과 사랑에 대한 단상에 이르러 숨을 돌리나 싶더니 대뜸 “그녀에게 ‘나 이뻐?’를 선물해야겠다”고 말한다.
알랭 드 보통이 ‘삶의 철학산책’에서 인용한 에피쿠로스의 행복 리스트를 살피다가는 친구들과 나눈 수다 한 토막을 옮겨 놓더니, 다시 보통의 책을 두고 “얇다고는 할 수 없는데도 뒷장이 줄어드는 게 아쉬워지는 책”이라고 한다.
책을 못 읽은 독자들을 안달하게 하는 이 얄미운 문장들은 글 곳곳에 등장하는데, 김용규라는 이가 쓴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을 소개하고선 “이 책을 쓴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하고, 팔레스타인 작가 가산 카나파니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를 두고는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 이제야 그를 알게 됐다는 게 정말 부끄러웠다”고도 말한다. 그가 권한 38권 가운데 몇 권만 다시 추려달라고 했더니, 책 욕심 많은 그의 대답은 “거의 다!”였다.
황 시인의 책이 활력을 주는 비타민이라면, 미국 문학 비평계의 거목 헤럴드 블룸이 쓴 ‘교양인의 책 읽기(해바라기 발행)’는 체력 강화용 보약으로 보면 된다.
그는 “독서에 관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는 어떠한 충고도 받지 말라는것”이라는, 하지만 깊고 넓은 독서의 즐거움을 얻으려면 “힘을 낭비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매력적인 충고’로 책을 연다.
책은 단편ㆍ장편소설과 시, 희곡의 네 장르에서 근ㆍ현대문학의 거장 36명의 걸작을 통해 ‘어떻게, 왜 읽을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투르게네프의 ‘베진 초원’을 두고는 “현실과 운명의 취약성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고 했고, 체호프의 작품에서는 “일상적 불행과 비극적 환희가 끊임없이 혼재하는 인간존재에 대한 진실”을 따라가라고 충고한다.
그가 지난 4반세기 동안 셰익스피어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경쟁자로 치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에 대해서는 인물창조나 관계설정 등을 셰익스피어 희곡 속 인물들과 비교하고, “돈 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알기 전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고 썼다.
저자는 “창조적 문학은 타자이며 외로움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타자(문학)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외로움을 견딜 수 있다(옮긴이의 말)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400여 쪽에 이르는 책의 글을 매듭지으면서 유태교 랍비 타폰이라는 이가 한 “일을 꼭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멋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는 말과 세익스피어의 “시간처럼 스스로 견디라”는 말을 인용했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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