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으니 서면으로 질의하겠습니다."6일 국회 행정자치위의 서울시청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다. 언뜻 보면 시정에 대해 직접 따지고 물어야 할 게 너무 많은 실정을 감안한 의원들의 효율적 감사진행 방편으로 들린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행자위 소속 여야 의원 23명은 이날 행정수도이전 찬반 논리전과 관제데모를 둘러싼 폭로와 비호에 주어진 질의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교통과 주택, 치안, 환경 문제 등 1,100만 서울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현안들은 "나중에 따로 물어보겠다"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심지어 제대로 된 정책질의를 한 몇몇 의원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만…"이라면서 고개를 숙이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민주노동당 이영순 의원이 "정책은 실종되고 지루한 정치공세만 벌이는 게 국민이 원하는 국감이냐"고 동료 의원들을 성토하기에 이르렀지만, 잠시 머쓱한 표정들을 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불꽃 공방이 밤늦도록 계속될 거라는 예상은 어이 없이 깨졌다. 공교롭게도 국감 현장을 생중계하는 TV 카메라들이 하나 둘씩 철수하기 시작한 때부터 의원들이 차츰 전의를 상실하는 듯 보였다. 추가 질의 때 이용희 행자위원장은 "빨리빨리 합시다" "웬만한 건 서면으로 하시죠"라며 의원들을 노골적으로 독촉하기까지 했다. 의원들도 기다렸다는 듯 이 위원장의 말에 고분고분 따라 오후 7시 30분 산회, 서둘러 저녁식사 자리로 떠났다.
국감장을 나오는 한 의원에게 "국감이 부실했던 것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어차피 정치가 선전·선동 쇼인데, 오늘 할 만큼 했지 뭘…"이라며 총총 사라졌다.
최문선 정치부 기자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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