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컴퓨터의 탄생 과정을 얘기할 차례다. 나는 1969년 말 미국에서 돌아와 이듬해 초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자계산실에 근무했다. 나는 미국 유타대에서 통계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컴퓨터에 푹 빠졌다. 컴퓨터를 잘 활용한다면 물리학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다.귀국해서 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전세계 컴퓨터 역사상 매우 중대한 사건이 그 해 발생했다.그건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미국의 인텔이라는 조그만 반도체 회사가 최초로 고밀도집적회로(LSI)칩을세상에 내놓았던 것이다. LSI는 신문지 절반 크기의 전자회로를 손톱 만한크기로 압축한 것이다. 이 LSI에 기억장치를 집어넣은 걸 메모리 칩이라고부른다. 또 LSI에 컴퓨터의 계산기능을 넣은 것을 마이크로프로세서다.
내가 흥분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내 손으로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겠구나”하는 자신감 때문이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한국 사람이 세계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최고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믿었다.
이유는 이렇다. 초기의 컴퓨터는 아이 주먹 만한 진공관을 몇 만개 사용했다. 그 기계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큰데다 엄청난 열이 발생, 고장이 빈번했고 다루기도 매우 힘들었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뒤에는 진공관이 콩알크기의 트랜지스터로 바뀌어졌고 열의 발생도 현저히 감소하는 등 실용 상태가 됐다.
그렇지만 장롱 만한 크기의 컴퓨터 속에는 수십만 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각 트랜지스터에는 세 개의 발이 달리는데 그 발 하나마다 전선이 연결됐다. 이처럼 옛날 컴퓨터를 뜯어보면 수백만개의 철사 줄이 엉켜있었다. 이렇게 복잡한 컴퓨터를 우리가 만든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마이크로프로세서 칩을 쓰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칩만 잘 적용하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LSI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놓은 크나큰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나는 우리나라를 컴퓨터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30년 넘게 컴퓨터와 희비고락(喜悲苦樂)을 함께 했다.
그 당시 나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다녔다. “마이크로 분야에서만은 한국이 세계 최고의 컴퓨터 개발 및 생산 수출국이 될 수 있다. KIST나 정부에서 내게 연구원 100명만 지원해달라. 그러면 3년 내 세계 최고의 컴퓨터를 만들어 내겠다.”
불행하게도 내 주장을 이해하기는커녕 귀 기울이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내가 로켓을 타고 별나라에 가겠다는 얘기쯤으로 취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보잘 것 없었다. 일본이 버린 한물 간 기술을 얻어 싼 인건비로 라디오나 TV를 만들어 수출하는 정도였다.
삼성그룹만 해도 삼성도시바나 삼성NEC 등은 일본의 도시바와 NEC와 합작해 기술을 얻어오는 단계였다. 그나마 끈질긴 설득 끝에 나는 겨우 KIST로부터 전자계산기 국산화연구실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연구원은 100명이 아니라 고작 10명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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