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40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는 매년 가을운동회가 열려 마음이 설레곤 했다. 학교 운동장에는 요즘 주유소에서 보는 것처럼 만국기가 펄럭이고 전교생은 청군 백군으로 갈라 머리에 백군은 하얀 띠, 청군은 푸른 띠를 불끈 동여매었다.교장선생님의 개회사에 이어 총괄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준비체조를 하고 운동장을 한 바퀴 손을 높이 흔들며 돌고 난 뒤 청백군 자리로 찾아갔다.응원전도 가히 전쟁을 방불케 했다.
3-3-7 박수에 맞춰 “이겨라. 이겨라. 우리 백(청)군 이겨라”를 목이 찢어지도록 외쳤다. 운동장에서는 달리기, 갈래 던지기, 피구, 단체 체조, 텀블링, 기마전, 청백 릴레이, 학부모와 함께 달리기, 장애물 경기 등 온갖 게임이 해질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이긴 쪽은 승리의 기쁨으로 환호성을 질렀고, 진 쪽은 이긴 쪽에 박수를 보내주곤 했다. 개인경기는 각자의 실력을 겨루지만 단체경기는 호흡과 화합이 잘 되는 팀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운동회를 보러 온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과 사과, 고구마, 땅콩, 대추, 호두, 밤 등 평소에는 먹기 힘든 과일과 먹을 것을 맘껏 먹을 수 있었다.
오후에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기마전과 릴레이 경기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기마전은 청백군이 홍마를 타고 상대방의 머리띠를 빼앗는 경기인데 최종 순간에 많이 살아 있는 쪽이 승자였다. 릴레이 경기는 마지막 주자가 골인지점으로 들어올 때까지 승부를 예측하기 힘들어 가슴을 조마조마하게했다.
드디어 교장선생님의 성적발표가 있을 때면 마치 권투선수가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는 듯한 심정으로 가슴이 조여 왔다. 승자는 환희의 기쁨을 만끽하고, 패자는 섭섭하고 아쉽지만 정정당당하게 싸웠기에 내년의 승리를 기약했다.
해가 넘어갈 때쯤 폐회사를 마지막으로 몸은 힘들고 고되었지만 뿌듯하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뒤 중고교 때는 공부에 쫓겨서 그런지 특별히 운동회가 없어 별로 추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나와 함께 기마전 때 밑에서 말을 하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매년 이맘때면 그 아이들이 보고 싶어진다.
우정렬ㆍ부산 중구 보수동1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