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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억압적 관계속 소외된 인간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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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억압적 관계속 소외된 인간 그려

입력
200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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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리데 옐리네크는 우리에게 낯설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출신 미하엘 하케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하면 “아!”하고 기억할 것이다.프랑스 중견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상처 받은 음악원 교수 에리카로 나와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연하의 제자와 비정상적인 사랑에 몸부림치는 이 영화는 2001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ㆍ녀주연상을 수상했고, 국내에도 개봉됐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 ‘피아노 치는 여자(83년ㆍ문학동네 발행)’의 작가가 바로 조국 오스트리아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긴 여성 시인이자 소설가인 옐리네크다.

그는 1946년 체코ㆍ유대계 과학자인 아버지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귀족 가문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 피아노와 오르간 리코더 등 기악과 작곡을 공부한 그녀는 64년 알베르트김나지움을 졸업한 뒤 비엔나 대학에서 연극과 예술사를 공부했으며, 이 같은 경험은 훗날 그녀가 문학작품 속에서 음악과 예술적 디테일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된다.

1967년 시인으로 데뷔한 그녀는 유년기부터 이어 온 시적 감수성을 이어가는 한편 소설과 드라마 대본, 희곡 시나리오 오페라 가사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관계’와 ‘권력’이라는 두 범주로 집약된다.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관계 속에 소외되고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은 그녀의 문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이질적이고 불편한 느낌을 받게 하지만, 그녀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성찰과 예리한 문체의 마력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국내에 소개된 ‘피아노 치는 여자’에서 작가는 파아노 교사인 딸 에리카가 어머니와 연하의 남자 사이에게 겪는, 관계의 갈등에 천착하고 있다.

딸의 경제력을 독점하기 위해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하려는 왜곡된 모성과 그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연하의 제자에게 함몰해가는 에리카.

하지만 제자에게 에리카는 성적 도구, 즉 물화된 존재이고 연륜의 결핍을 극복할 수 있는 성 우월의식의 돌파구일 뿐이다. 결국 작가는 에리카의 모든 관계맺기를 좌절시킨 뒤 왜곡된 모성으로 상징되는 집으로 되돌려보낸다.

성권력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또 다른 문제작 ‘욕망(89년)’에서는 남편에게 성을 팔고 생존을 영위하는 억압의 놀이로서의 결혼생활을 폭로했고, ‘연인들(75년)’이라는 작품에서는 사랑의 허상 이면에 도사린 시장원리, 인간관계의 상품화 문제를 묘파하기도 했다.

이 같은 그녀의 작품에는 도착증에 가까운 적나라한 성 묘사와 공격적인 반어가 난무, 유럽 등 영어권 평단으로부터 격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증오의 포르노 문학’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박희경(42) 성균관대 강사는 “너무 도발적인 글들을 써온 그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의외”라고 말했다.

74년 오스트리아 공산당에 입당(91년 탈당)하고,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라로 밝히기도 한 그녀는 우파 정부와 껄끄러운 관계로, 조국에서보다는 독일에서 문학적 역량을 평가 받아왔다.

86년 하인리히 뵐 상, 94년 페터 바이스 문학상, 2002년 베를린 연극상, 2004년 레싱상 등을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옐리네크는 자택에서 응한 오스트리아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스트리아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 사실이 놀랍고 무척 영광스럽다”며 “하지만 몸이 너무 아파서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엘프리데 옐리네크 여성 10번째 노벨문학상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0번째 여성이다. 아직 여성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경제학상 등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문학상수상 빈도는 높은 편.

첫번째 여성 수상자는 노벨상이 제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09년 탄생했다. 수상자는 스웨덴의 소설가 셀마 라겔뢰프. ‘뢰벤시욀드의 반지’ 등 설화나 영웅담에 기초한 작품을 썼다.

이후 이탈리아의 그라치아 델레다(1926년), 중하류 계층 여성의 운명을 파헤쳤던 노르웨이의 소설가 시그리크 운세트(1928년), ‘대지’로 유명한 펄 벅(1938년), 칠레의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1945년), 스웨덴의 시인넬리 작스(1966년)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90년대 들어 여성 작가의 수상 소식은 자주 들려왔다. 수상자들의 특징은 소수자로서 여성의 시각을 바탕으로 억압과 학대에 시달리는 이들의 일상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1991년 수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나딘 고디머는 특권층인 백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인종차별정책이 남아공 국민 전체에 미치는 파괴성에 관심을 기울여 ‘보호주의자’ ‘낯선 자의 세계’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토니 모리슨(1993년)은 흑인 여성으로서 겪은 체험을 소설화 했다. 대표작은 ‘솔로몬의 노래’ ‘타르인형’ ‘재즈’ 등이며 환상적이고 시적이면서도 힘이 넘치는 문장으로 유명하다.

가장 최근 수상자는 폴란드의 시인 바슬라바 심보르스카(1996년). 30년 동안 7편의 시집을 발표한 그녀는 노벨상을 받기 이전까지는 국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세계 평단은 심오한 폴란드 시의 탁월함이 비로소 인정 받았다고 평했다.

/최지향기자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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