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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1년전 발행 美잡지 첫 공개/묘사된 생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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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1년전 발행 美잡지 첫 공개/묘사된 생전 모습

입력
2004.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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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는 英빅토리아 여왕에 깊은 관심… 美담배 피워"'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에 실린 명성황후 관련 특집기사 내용 중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명성황후에 대한 묘사. 이 기사는 8페이지 가운데 1페이지를 넘게 할애해 명성황후의 외모와 생활습관은 물론 권력자로서의 태도 등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당시 44세의 명성황후 외모="남편, 내시,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남성도 그(명성황후)를 본 적이 없다. 외국인이나 백성이 보았다간 죽음을 당할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왕비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고 프랭크 카펜터는 기사에서 밝히고 있다. 당연히 '조선 왕비의 궁녀'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사진이 명성왕후가 아니라는 얘기도 된다.

1894년 여름 카펜터 역시 고종과 세자(순종)를 직접 면담했지만, 명성황후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조선 땅에 들어와 명성황후를 만난 적이 있는 미국인 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명성황후의 생김새를 묘사했다. "중간 키에, 몸매는 호리호리하고 곧았다. 얼굴은 길고, 이마는 넓고, 코는 길고 가늘고 귀족적이며, 입과 아래턱에는 결단력과 개성이 드러난다. 광대뼈는 튀어나왔고, 귀는 작고, 얼굴빛은 유분이 풍부한 영양크림 색을 띠고, 눈썹은 아치 모양이고, 아몬드 형의 눈은 지적이고 예리해 보인다."

명성황후의 전통 옷차림이 서구인들의 시각에는 화려하게 비쳐진 모양이다. "왕비는 옷이 많아서 자주 갈아입는다. 어떤 날은 금박을 수놓은 진홍빛 능라를 입고, 어떤 날은 자주색 옷을 입는다." 그러나 명성왕후는 검소했던 것 같다. 쌍가락지 이외의 장신구를 즐기지 않았다. "보석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길고 가는 손은 모양이 예쁜데, 다이아몬드로 빛난 적이 없다. 유일하게 끼는 반지는 묵직한 금가락지인데, 항상 손가락 하나에 쌍으로 끼었다."

◆서구에 우호적인 명성황후=명성황후가 서구 문물과 서구의 정치, 생활에 깊은 관심을 보인 점도 흥미롭다. 명성황후는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는데, 담뱃대를 잘 쓰지 않고 궐련을 선호했다. 특히 "미국에 담배를 주문해 피웠다."

외국 부인들과 만날 때는 주로 외국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를 좋아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도 언제나 명성황후가 관심을 보이는 대화 주제였고, 다른 나라의 군주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또 "그(명성황후)는 클리블랜드 대통령 부부를 좋아하는데, 얼마 전 미국인 부인들에게 '우리는 당신네 대통령을 매우 좋아한다. 그가 재선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대통령 가족과 그들의 가정생활에도 관심이 많아, 그의 자녀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했다"고 기록, 1892년 재선에 성공한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는 미국공사관 소속의사로 친척인 민영익의 생명을 구해준 H. N. 알렌 박사 및 그의 아내와 친분을 가졌고, 알렌 박사를 가족처럼 여겼다.

◆권력자 명성황후=카펜터는 기사의 부제를 '은둔의 왕국 궁궐의 막후에서'라고 달 정도로 권력자로서의 명성황후도 조명했다. 여름철 명성황후와 고종이 함께 궁궐 안 연못에서 뱃놀이를 할 때의 일화는 명성황후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명성황후가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내관 중 하나를 떠밀어 물에 빠뜨리는 장난을 친다. 하지만 신하들은 그를 구해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종과 명성황후의 눈치를 살핀다. 만약 명성황후는 단지 장난을 쳤을 뿐인데, 고종이 그가 물에 빠져 죽기를 바란다면 물에 빠진 내관을 구한 자는 왕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에 목숨을 구하기 어려울 테고, 구하지 않을 경우에는 왕비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명성황후가 "왜 그를 빠뜨린 채로 내버려두냐"고 성을 낸 후에야 물에 빠진 내관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명성황후는 칸막이 뒤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고종이 대신을 접견할 때 참석하는 등 국사에 깊숙이 관여했다. 정부의 모든 부처를 장악하고 있으며, 왕도 국사에 관해 모든 일을 왕비와 의논을 했다고 한다. 카펜터는 "조선 왕조를 지배하는 왕좌의 배후에 있는 세력이고, 당시 조선의 변혁을 좌우하는 인물"로 명성황후를 평가했다. 우리가 새롭게 해석하는 명성왕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궁중여인 사진 신분은 상궁"/"대원군과 목숨건 권력 다툼에 명성황후, 사진 일절 못찍게 해"

1990년 국정 중등 국사교과서에는 명성황후로 소개되는 사진이 등장했다.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사진이다. 이 사진은 97년 개정판 교과서에서는 삭제되고,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 옥호루의 사진으로 대체됐다. 그 사진 속 인물이 명성황후인지 아닌지가 그만큼 논란거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미술사학자 이돈수씨가 발굴한 1894년도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 11월호에 실린 명성황후 특집 기사는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조선 왕비의 상궁(The Queen Of Korea's Chief Lady In Waiting)'이라는 설명을 달아 명성황후를 보좌하는 상궁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왕비로도 혹은 왕족으로도 또는 궁녀로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앴다.

명성황후의 모습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사진은 두가지.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1904년)에 실린 사진과, 이와 배경을 달리하는 호머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의 사진이다. 이번에 공개된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의 '조선 왕비의 상궁'사진은 '대한제국 멸망사'의 것과 동일하다. 이 사진은 언더우드 여사의 '조선생활기'(1905년), 프랑스 잡지 '르 뚜르 뒤 몽드'(1904년) 등에서도 확인됐다. 인물은 같지만 배경이 다름으로써 야기된 사진 조작 여부에 대한 논란은 일단 '꼬레아 꼬레아니'의 사진을 원본으로, 같은 사진의 배경을 조작한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명성황후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 등의 학자들은 이 사진의 인물을 명성황후로 보았다. 그 논거는 비녀를 2개 꽂은 머리모양은 황후만이 할 수 있으며, '꼬레아 꼬레아니'의 사진이 촬영된 장소가 고종의 서재 겸 집무실인 경복궁 집옥재라는 점을 들고 있다. 반면 신복룡 건국대 교수는 "명성황후의 초상 사진은 없다"고 주장한다.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목숨을 노릴 정도로 권력다툼을 하면서 근친이 아니면 만나지도 않았고, 초상화나 사진을 일절 찍지 못하게 했으며, 당시 사회 통념상으로도 황후가 외간 남자 앞에서 사진을 찍는 일을 있을 수 없었다는 것. 이 같은 주장은 이번에 발굴된 잡지의 특집기사에서도 언급돼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복식에서도 당시 중전이 입어야 할 홍원삼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선 왕비의 상궁' 사진은 1900년대 초 프랑스에서 발행된 알레백크의 엽서세트에 포함되거나 유럽 등지에서 초콜릿, 비누, 화장품 등에 끼워서 판매하는 조그마한 사진 형태 상품카드로도 광범위하게 유통됐다. 이돈수씨는 "프랑스 선교사 뮈텔을 비롯해 조선 땅에 나와있는 많은 외교관, 선교사들이 자국에 조선의 현황을 보고할 때 이 사진을 동봉했을 만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사진이었다"며 "당시 조선 여인의 이미지컷으로 상업적으로 유통된 사진이지, 명성왕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은-뉴욕 대중월간지… 세계풍물 소개 '조선의 왕비'를 1894년 11월호에 특집기사로 게재한 '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은 뉴욕에서 발간되던 대중적인 가정종합월간지. 잡지사 주소는 뉴욕 14번가 15번지이며, W. 제닝스 드모리스트가 발행인으로 표시돼 있다. 당시 가격은 1부에 25센트이고 연간 구독료는 2달러. 또 열차용(Railroad Edition)으로 명시돼 있어 일반 구독용이 아니라 주로 여행객들에게 판매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사 내용도 미국에 국한 된 것들이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생활과 풍습 등을 소개하고 있다. 11월호에도 커버스토리로 실린 '조선의 왕비' 외에 '중국의 황제 미망인' '미인과 추녀' '에티켓에 대한 질문' 등 세계 각국 여인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으며 음식과 요리, 디자인 등도 다루고 있다. 이 잡지를 공개한 이돈수씨는 "5년 전 미국에서 이 잡지를 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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