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명성황후 시해 오늘 109돌/"그녀는 상궁이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오늘 109돌/"그녀는 상궁이었다"

입력
2004.10.08 00:00
0 0

*이돈수씨, 시해 1년전 발행 美잡지 첫 공개명성황후(明成皇后·1851∼1895)의 생전 모습을 기록한 사진이다, 아니다로 논란이 계속돼 온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이 명성황후를 보좌한 상궁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자료가 처음 발굴됐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109주년(8일)을 하루 앞둔 7일 미술사학자 이돈수(李燉帥·38)씨가 시해 1년 전 명성왕후에 대한 특집기사 '조선의 왕비'를 게재한 미국 잡지'드모리스트 패밀리 매거진' 1894년 11월호를 공개했다. 특집 기사는 미국인 여행전문 저널리스트 프랭크 G 카펜터(1855∼1924)가 그 해 여름 고종과 세자(순종)를 인터뷰해 잡지의 커버스토리로 썼는데, 표지에 그동안 학계의 해석이 엇갈린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 사진을 싣고 '조선 왕비의 상궁(The Queen Of Korea's Chief Lady In Waiting)'이라고 신분을 명확히 표기했다.

이번에 발굴된 잡지는 지금까지 확인된 이 사진의 출처 가운데 시기상으로 가장 이를 뿐만 아니라, 사진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명기하고 있어 그 동안의 명성황후 추정 논쟁을 종결지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학계는 같은 사진을 카를로 로제티의 '꼬레아 꼬레아니'(1904년), 언더우드 여사의 '조선생활기'(1905년), 호머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에서 확인했으나, '정장 차림의 궁중 여인' '정장한 조선 여인'이라고만 설명돼 있어 사진의 주인공이 명성황후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은둔의 왕국 궁궐의 막후에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특집 기사는 또 명성황후가 시해되기 1년 전의 모습을 생생하게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8페이지에 걸쳐 실린 '조선의 왕비'에서 카펜터는 명성황후를 직접 만나 본 미국인 부인들로부터 들은 정보 등을 취합해 외모, 성격, 궁중 생활상, 고종과의 관계, 그리고 국내외 정세 속에서 황후의 권력관계 등을 상세히 서술했다. 서구 언론이 명성황후를 다룬 글이나 지금까지 확인한 명성황후 관련사진 대부분은 시해사건이 발생한 뒤의 것이었다.

사진논쟁과 관련, '조선궁녀론'을 주장해 온 건국대 신복룡(申福龍) 교수는 "서구 언론이 생전에 명성황후를 다룬 것은 드물다"며"이 자료는 명성황후의 사진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소중한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 2001년 같은 사진에 '일본 과격분자에 의해 살해된 한국 황후'라는 설명을 단 프랑스 잡지 '르 뚜르 뒤 몽드'(1904년)를 공개하며 '명성황후론'을 고수해 온 서울대 이태진(李泰鎭) 교수 역시"1894년 7월 명성황후 제거를 시도한 경복궁 점령작전이 실패한 직후 서양인들의 비난 분위기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는 일본의 선전전략으로 이런 기사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면서도"서구 언론에 명성황후가 소개된 것 중에서 시기상으로 이르기 때문에 자료적 가치는 분명 크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관련기사 A6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