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투사이자 언론ㆍ사학계의 거목, 고 천관우(千寬宇) 선생. 유신시절 민주화운동 했다는 이들 치고 그의 이름 석자에 기대지 않은 이 드물고, 그의 그림자 아래 잠시 머문 이력 하나로 고난과 정통의 경력을 과시하던 이역시 적지 않다.이제 세월이 바뀌어 그에게 술 얻어먹고 가르침 받아 출세한 이들은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도 됐지만, 그의 부인 최정옥(78) 여사는 충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 연명하고 있다.
언론사 퇴직 후 반독재 민주수호협의회와 민주회복국민회 대표로 일하던 시절, 그의 주변은 사람들로 들끓었다. 어느 해 정초던가 청와대 고위직에 있던 한 언론계 후배가 고급 양주 한병을 보내왔던가 보다. 최 여사는 그양주를 시장에 내다팔아 소주로 바꾼 뒤, 줄줄이 인사하러 온 기자며 후배들을 대접했다고 한다.
‘반계 유형원 연구’와 같은 역사논문은 이병도 선생이 “실학연구의 방향을 제시한 군계일학(群鷄一鶴)같은 업적”이라고 평했을 만큼 학문적으로도 높고 깊었다. 73년 후배들이 청해 개설한 근ㆍ현대사 학습모임에는 정동영 과학기술부 장관, 강창일(열린우리당) 의원, 김영준 민주화기념사업회 사료관장 등이 열성 ‘학생’이었다.
하지만 81년 신군부의 ‘민족통일협의회’ 의장을 맡아 이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겼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지인은 “그 시절 그는‘전두환이 아니라 더한 사람이라도 통일사업 한다면 협조할 것’이라고 말한 통일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91년 그가 지병으로 숨진 뒤, 수양딸(일본 거주)이 사업에 실패해 집마저 날리자 홀로 남은 최 여사는 동사무소에서 주는 생계보조금으로 살고 있다.
강 의원은 “정 장관과 나는 대학(서울대 국사학과) 직계 후배로, 선생님께서 결혼식 주례까지 서주셨을 만큼 빚이 많다”며 “인연 깊은 선배ㆍ동료들과 상의해서 늦었지만 유족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이상기 회장도 “언론계에서도 원로들을 중심으로 천관우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한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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