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개선과 탈북자 지원을 주내용으로 하는 ‘북한인권법안’이 지난4일 미 연방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은 대통령에게 넘겨져 10일내 서명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이미 상ㆍ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어서 서명이 확실한 상태다.이 법안은 여러 이유로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비교적 보수적인 인사들조차 우려했던 사안인데, 전격적으로 통과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측의 우려가 고려되거나 반영된 흔적은 없어 보인다.
법안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단체 및 개인에게 2005~2008년 회계 연도에 매년 2,000만 달러를 지원할 수 있으며, 북한 주민의 미국으로의 난민 또는 망명 신청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점이다.
결국 이 법안에는, 북한의 탈북자를 미 정부가 직접 지원하며 북한정권의 변화를 미국이 물리적으로 강제하겠다는 뜻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1998년 이라크해방법, 지난해 이란민주화법이 미 의회를 통과한 뒤 각각 군사적 행동이 감행되거나 그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예를 들어 한반도에서 극도의 불안상황이 초래될 가능성을 벌써부터 염려하고 있다.
물론 북한인권법과 한반도전쟁 가능성을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힌 한반도 정세와 이라크, 이란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논리적 비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인권법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인권문제와 탈북자문제에 직접개입하게 됨으로써 우리 정부와 국민의 정치ㆍ경제적 부담이 크게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하튼 미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국외교 정책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역사적으로 볼 때 고립주의와 개입주의의 반복 순환으로 이해된다.
고립주의는 건국 초부터 1차 대전직전까지 지속된 불개입정책으로 외부세계의 분쟁에 정치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1차 대전이후부터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보전이라는 기치아래 외부세계 분쟁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2차 대전이후에는 주지하다시피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피상적으로 보면 미국의 외교정책의 극적인 전환이 20세기에 이루어 진 것같으나 본질적인 외교정책기조는 큰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외부세계에 대한 개입 혹은 고립 여부는 철저히 미국의 이익보호라는 원칙에 의해 이루어 진다.
건국초기부터 1차 대전이전까지 미국은 신생국가로서 외부의 분쟁에 개입할 여력이 없었으나 20세기 초부터 무역과 해외투자의 확대로 전세계적 안정이 자신들의 이익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게 된 것이다.
또한 고립에서 개입으로의 전환 결정에 있어서 미국은 그 어느 국가의 영향도 받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보호라는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이번 북한인권법 역시 가장 민감한 동맹국가인 한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결정되었다. 한미관계에 있어 이러한 변화는 이미 2001년 부시행정부의 방위전략보고서에 예견된 바 있다.
2001년 보고서는 미국은 핵심 이익이 위해를 당할 경우 동맹국의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북한인권법의 제정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북한인권법의 통과는 앞으로 미국이 자신들의 관점에서 전략적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한국의 이해와는 무관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더욱 커졌음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미국의 뿌리깊은 일방주의 전통에 대해 우리는 비교적 안이하게 대처해 왔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 간의 간극이 점차 벌어질지아니면 합일점을 만들어 나갈지는 속단할 수 없지만, 한국의 외교정책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정하용 경희대 국제지역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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