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서 있거나 지뢰밭을 걷는 기분입니다."취임 10개월을 맞은 안병영 교육 부총리가 지난 2일 그간의 소회를 담은 이메일 서한을 각계 인사와 교육 관계자, 학부모 등 9만3,000여명에게 보냈다. 안 부총리는 그동안 현안이 있을 때마다 '정책 고객'들에게 20여차례 서한을 발송한 적이 있지만 대부분 관련 실·국에서 작성했으며, 자신이 직접 쓰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안 부총리는 먼저 '한계' '좌절' '위기감' 등 어려운 상황을 떠올리는 용어를 써가면서 자신의 심경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요즈음 성취감보다는 좌절과 위기감에 시달리면서 누구라도 붙잡고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밖에서는 평온하게 보일 때도 안에서는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라고 적었다.
그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핵심 교육정책들이 흔들리는 이유를 '둘로 갈라진 목소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대다수 쟁점의 여론이 반반씩 갈리는 경우가 많고 사회적 합의 창출이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아 문제 해결에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 들기 일쑤"라고 이 같은 상황을 묘사했다.
또 "쟁점이 불거지면 진보적인 쪽에서는 시장과 경쟁만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자로 공격하고 보수진영에서는 평등에만 집착하는 반시장주의자나 민중주의자로 매도할 때가 많아 협공의 대상이 되곤 한다"고 소개했다.
안 부총리는 그 예로 고교평준화나 고교등급제 논쟁을 들었다. 안 부총리는 고교등급제에 대해 "학교등급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입장도 강력한 논거를 갖고 있지만 설령 고교간 평균적 학력격차가 존재하더라도 그 격차를 개인의 학력 격차로 환원한다는 것은, 더욱이 선배의 성적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이라고 반대했다.
안 부총리의 서한을 놓고 교육계는 의견이 엇갈렸다. 교육수장의 고민을 잘 드러내 현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이 많지만 국정감사 이틀 전 돌연 서한을 보낸 것은 국회의원들의 집중 공격을 의식한 '물타기용 편지'가 아니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부총리 비서실 관계자는 "'대필'에 의한 서한 발송이 교육정책 이해 및 홍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라 안 부총리가 직접 서한을 썼을 뿐 별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김진각기자 kimjg@hk.co.kr
안 부총리 서신 전문은 교육부 e교육소식 (moe.news.go.kr)에 게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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