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어, 가고 싶은 대중음악회가 둘 있었다. ‘추억의 낭만 콘서트’와엘튼 존 내한 공연이었다. 황량하던 10~20대 때, 이 가수들에게서 적지 않은 정서적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낭만 콘서트는 요행히 가게 되었고, 엘튼 존 공연은 TV에서 녹화방영한 추석프로를 보았다.낭만 콘서트 공연장은 놀랍고도 반가웠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40~50대 장년 부부들이 상암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풍경부터 감격스러웠다. 일 중독자처럼 살아온 그들은 모처럼 직장일, 집안일에서 해방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자 기대와 기쁨에 들떠 있었다.
그리운 이름들인 최백호 김세환 이용복 하남석 임창제 이수영 윤형주 송창식 등이 차례로 1960~70년대 노래를 열창했다. ‘수와진’ ‘유심초’ ‘4월과 5월’ ‘둘다섯’ ‘펄시스터즈’ ‘하사와 병장’ 등 기억의 창고에 갇혀있던 그룹들도 뜨겁고 안타깝던 노래를 하나씩 불러내 가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장년층을 위한 축제가 얼마만인가. 그들은 주로 한국 포크음악의 맥을 이어온 통기타 가수나 그룹이었다. 서정적인 노랫말과 멜로디, 참신한 리듬 등으로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숨쉬던 옛날이 부활하고 있었다. 모두노래에 실려 우울과 희망이 교차하던 70년대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포크 가수들은 그러나 80년대 들어 설 땅을 잃었다. 신군부의 억압에 주눅든 채 현란한 댄스음악과 진부한 트롯, 저항성 강한 민중가요에 밀려 사라져 갔다.
이후 이들은 앨범을 내거나 새로운 음악적 시도나 도전을 포기한 채, 한강변 카페에서 음유시인처럼 옛 노래를 읊으며 안주해 왔다. 이 콘서트가 침묵과 시간낭비를 자성하고 그들이 새롭게 출발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엘튼 존 공연 때는 비가 간간이 뿌리기도 했으나, 달아오른 분위기는 식을줄 몰랐다.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 세계적 가수는 피아노 건반을 열정적으로 두드려가며 진지하게 노래했다. 기교를 배제시킨 정통적 창법으로 두 시간 여를 공연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노래로 한국의 관객을매혹 시키고 있었다.
그는 지난 7월 미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연예인이 부시 행정부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할 경우, 경력 상 피해를 입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미국의 정치적 경직성을 고발했다. 밥 딜런이 반전 노래를 부르고 비틀스가 세태를 꼬집던 60년대와는 판이하다는 것이다. 인간과 가수로서의 그릇을 엿보게 하는 발언이었다.
대중음악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콘서트와 관련해서, 엉뚱하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떠올린다. 그도 비슷한 노래를 들으며 젊은 시기를 보낸 동시대인이다. 포크송 가수들처럼 오랜 침묵의 휴지기를 보내던 그는 어느덧 선친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후광에 힘입어 침몰해 가는 한나라당을 복원시키는 선장이 되었다.
대표가 처음 됐을 때 그는 성공적 선장으로 비쳤다. 불황에 고통 받는 시민을 위로하여 총선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남북관계에서 진취적 면모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크게 흔들리고 불안해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과 국가보안법 등 주요 이슈에서 우왕좌왕함으로써, 지도력을 의심 받고 있다.
왜 대표 초기의 진중하면서도 참신한 모습을 잃어버린 것일까. 그 동안 만난 당의 원로중진의 조언에 너무 무게를 둔 탓에, 판단이 모호해진 것이 아닐까. 대표로서 자기 색깔을 점차 선명하게 드러낼 시기에 오히려 색깔이 흐려지고 있다.
불편하게 비판하고 불안하게 도전해오더라도, 당내의 새로운 사고와 참신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흘러간 노래는 추억으로서 소중하나,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그 역시 변화에 맞는 새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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