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한국학은 한국의 역사와 문학이 그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학은 한국의 경제성장과 급속한 민주화 과정, 사회적 변화가 보다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그래서 많은 외국인 학자들이 ‘역동적인 한국(dynamic Korea)’이란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미국에서 생활해본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미국을 ‘재미없는 천국’으로,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학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현상 중에 하나가 ‘디아스포라(Diasporaㆍ이산)’이다. 디아스포라는 원래 세계적으로 분산되어 살았던 유대인과 이들의 특수한 문화를 지칭하는 특수한 용어였다.
이 용어가 인류학ㆍ사회학자들에 의해서 이민사회의 특수한 문화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학의 경우 디아스포라는 주로 해외에 살고 있는 재외한국인의 특수한 문화를 분석하는 틀로써 사용된다.
재외한국인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화에 동화된다. 그 결과 제3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미한국인, 재일한국인, 그리고 중국의 조선족 등이 그 분석대상이 된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피부로 체험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수많은 한국인들이 새로운 일자리와 희망을 찾아서 이민을 선택했다.
이들은 10년 여 외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정착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다음 고향을 방문하여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곤 한다.
그러나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을 만난 즐거움이 곧 실망감으로 바뀐다. 돌아온 이들의 변화된 모습과 생각, 그리고 생활방식을 보면서 ‘너는 이제 한국인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갈등 탓인지 ‘동포’가 아니라 ‘똥퍼’라는 자괴감 섞인 말이 재외한국인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바로 남과 북의 관계가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서로가 같은 민족이라는것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생각과 생활방식, 그리고 문화에서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6ㆍ25전쟁을 경험한 남한 사람들에게 ‘조문파동’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북한의 특수한 사회체제 하에서 6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임에 틀림없다.
1994년에 이어 2004년 또 한번 겪어야 했던 조문파동은 용천에 대한 남한의 따뜻한 지원으로 형성된 남북 간의 동포애를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오랜만에 재외한국인들을 만나서 다시 한국인으로 돌아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충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그곳의 생활방식과 문화에 동화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은 그곳에 살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러한 갈등은 서로 간에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북한의 사회체제 문제에 우리가 간섭해도될까? 북의 문제는 북의 내부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도움의 손길을 원한다면 도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가를 요구한다면 도움의 의미가 퇴색된다.
인권문제는 만고의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인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또 다른 인권문제와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이라크 문제가바로 지금 전개되고 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 간의 관계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만고의진리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보다도 부모 형제 사이에서, 그리고 친구 사이에서 사소한 문제로 등을 돌리고 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가깝다고 느끼면서도 가까워지기 어려운 남북관계에 대한 좀 더 신중한 접근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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