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데이타통신㈜이 모든 부처 행정 전산화 사업의 주계약자가 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자유경쟁을 하는 게 원칙인데 특정 회사에 통째로 사업을 맡기는 건 특혜라고 주장했다.그들은 내 의도는 알아보지도 않고 멋대로 ‘독점’이라고 판단, 정계와 언론계를 통해 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래서 나는 1984년 봄 정보산업연합회와 소프트웨어협동조합 관계자 모두를 초청, 우리의 전략을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한국데이타통신㈜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재탕이 될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당시 KIST는 일반 시장에서 민간 소프트웨어 용역 업체들과 경쟁해 상당한 분량의 일을 따내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 기업들은 정부 설립 연구소인 KIST가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서 민간 회사와 일대일로 경쟁하는 건 부당하다고 여겼다. 이런 마당에 한국데이타통신㈜까지 나타나자 일을 독식할 지 모른다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회사는 여러분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다.먼저 시장을 만든 다음 여러분에게 나눠 주려고 할 뿐이다. 우리는 전체 프로젝트를 관리, 정부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만 하고 실제 사업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또 한국데이타통신㈜은 정부의 일을 제대로 해주고 제값을 받아내겠다. 그러면 저가 낙찰에 따른 손해도 사라지게 된다.” 나는 또 선(先) 투자 후(後) 정산 방식이기 때문에 일을 곧바로 착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얼굴에 분노 대신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술 전수도 이야기 했다. 세계 최고의 프로젝트 수행방식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을 선진국으로부터 도입, 나눠주겠다고 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소프트웨어 자체를 미래 지향적이고 개방형인 유닉스를 토대(Platformㆍ플랫폼)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유닉스를 채택하면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각국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각각 사투리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짜는데 반해 우리는 세계 공통의 개방형 소프트웨어인 유닉스로 프로그램을 짤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어 실무로 들어갔다. “행정 전산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면 11개 업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선정 작업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공개 경쟁을 통해 업체를 정하고 그 리스트만 내게 보내면 된다”고 설명했다.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소프트웨어 업체 대부분은 그때 탄생했다. 예를 들어 모 그룹의 계열사들은 소속 회사의 전산화를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는데, 행정 전산화를 계기로 관련 부서를 모두 바깥으로 떼어내 하나의 독립된 종합소프트웨어 회사로 발족시켰다. 이처럼 그룹의 종합소프트웨어 회사가 생긴 건 행정 전산화 사업이 중요한 단초가 됐다.
삼보컴퓨터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11개의 리스트에는 삼보도 들어 있었다. 나는 삼보를 리스트에서 빼고 그 다음 순위의 회사를 넣으라고 했다. 전산화 사업이 마치 삼보를 돕기 위한 수단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해서 소프트웨어 업체들과의 적대관계는 말끔히 풀리게 됐다. 그리고는 약속한 대로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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