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9월30일 바이올린 연주자 다비트 표도로비치 오이스트라흐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74년 암스테르담으로 연주여행을 갔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에게는 국경이라는 것이 하잘 것 없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 동포로서 친밀감을 느끼고자 하는 후대인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다. 오이스트라흐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중세 이래 폴란드 영토였던 우크라이나는 17세기 후반 러시아 영토가 되었고, 그래서 오이스트라흐는 제정러시아 신민으로 태어났다.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차르가 물러난 뒤 10대 초의 오이스트라흐는 얼마간 우크라이나사회주의소비에트공화국 인민으로 살았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이 창설되면서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한 공화국이 됨에 따라 그는 소련 사람이 되었다. 오이스트라흐는 소련 사람으로 죽었다. 그러나 오이스트라흐가 죽고 16년 뒤 그의 조국 소련이 해체되면서 그는 다시 우크라이나 사람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때까지 주로 소련에서 활동하던 오이스트라흐는 1945년 이후 활발한 해외 연주여행을 통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독주로도 세계 각지의 클래식 팬들을 사로잡았지만, 역시 바이얼리니스트인 아들 이고르 오이스트라흐(1931년생)와의 이중주로도 이름을 떨쳤고, 특히 러시아 출신 두 동료와의 피아노 3중주로 성가를 올렸다. 그 두 동료는 모스크바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스비야토슬라프 니콜라예비치 크누셰비츠키(1908∼1963)와, 바르샤바의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한 바 있는 피아니스트 레프 니콜라예비치 오보린(1907∼1974)이다. 오이스트라흐는 오데사음악연극원 출신이었고 크누셰프스키와 오보린은 모스크바음악원 출신이었지만, 이 세 사람은 그들의 음악적 생애 내내 같은 '소련 사람'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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