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8,000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이를 (핵)무기로 만들었다는 북한 최수헌 외무성 부상의 발언은 북한이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폐연료봉은 1994년 제네바 핵동결협정에 따라 동결된 이후 북한이 시간 날 때마다 재처리 완료를 주장하며 국제사회를 향해 제시한 '핵 억지력'의 증거물이었다.북한은 지난해 이후 폐연료봉의 재처리와 관련한 발언의 강도를 높여왔다. 지난해 4월18일 "이제는 8,000여 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작업이 마지막 단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던 북한 외무성은 6개월 뒤 "8,000여 개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성과적으로 끝냈다"고 발표했다. 이어 "때가 되면 핵 억제력을 실물로 증명해 보일 것"이라며 수위를 높였다. 올해 1월에는 미국 민간 방북단을 영변 핵 시설로 데려가 플루토늄을 만들기 위해 폐연료봉 재처리를 이미 지난해 6월말 끝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에서 보면 최 부상의 발언은 그 동안 나온 '억제력' 주장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 대선을 앞두고 북미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구체화한 것은 미 대선정국을 이용해 협상력을 제고하려는 북한의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최 부상이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한과 평화공존할 의지가 있다면 핵문제는 정당하게 풀어야 한다"고 협상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제사회는 최 부상의 발언을 계기로 북한의 핵 능력에도 새삼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한미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이 8,000개의 폐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할 경우 5개에서 최대 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할 수 있다.
최 부상이 언급한 무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한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로 해석되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북한은 이에 앞서 다른 경로를 통해 이미 1∼2기의 핵무기 제조에 성공했다는 게 한미 당국자들의 공통된 관측이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6者회담 계속 지연
9월 중에 열릴 예정이었던 4차 북핵 6자회담 개최가 결국 무산됐다. 중국과 러시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부정적 태도로 11월 미국 대선 이전 개최도 사실상 어려워진 상태다.
북한은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핵물질 실험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트집잡아 4차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 27일자는 "미국이 남한의 핵관련 실험은 묵인·두둔하면서 북한 핵문제를 시비하는 것은 미국의 2중적인 태도를 잘 보여 주는 것이며 그것이 6자회담 개최를 무산시키는 근본요인"이라고 주장했다. 최수헌 북한 외무성 부상도 이날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핵물질 실험으로 불거진 의혹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회담 참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실제 북한의 의중은 다른 데 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한편에서는 6자회담에 진지하게 응하고 있다고 밝히는 것을 보면 6자 회담의 틀을 깨기보다 미 대선까지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부상이 유엔 연설에서 선(先) 핵포기는 있을 수 없다며 '동결 대 보상'의 동시행동 원칙을 강조한 것도 협상창구를 열어두는 제스처로 이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 대선 이후까지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북한의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 실험 같은 도발적 행위. 최근 한미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 장관이 "북한이 노동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할 경우 남북관계와 북미·북일관계 전반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정부가 회담 참가국들과 보조를 맞춰 북한의 진정을 유도하는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이다. 김정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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