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詩- 危難한 時代의 詩人의 辨
“일천 편의 애국시를 써도
그 나라 헌법의 단 한 줄도 고칠 수 없고”
일백 권의 시집을 내도
구멍난 가계의 한 귀퉁이도 메울 수 없는
위난한 시대의 무능한 시인으로 살아왔다
처음부터 모퉁이에 버려진 돌임을 알기에
세상의 빛나는 별들 사이에 끼어들 생각 없었고
스스로 힘없음에 자조하면서
돌아갈 곳은 시밖에 없었다
시 앞에 서면 경건히 옷깃 여미고
한없이 충직한 가복이 되었다
…
밤을 새워 배운 것은 한없이 낮은 자의 평안이었고
구도자의 마음으로 결핍과 충만 구속과 자유
고통과 기쁨이 한 나무에 핀 두 송이 꽃임을 깨달았다
할 수 있다면 위난한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앓는 이의 가슴에 한 자루 촛불이길 염원했지만
그 또한 주제넘는 능력 밖의 일이었다
시는 일찍이 내 생을 관통해 간 한 발의 탄환이었고
나는 그로 하여 일생을 앓으며
만신창이로 여기 서 있다
진실로 내 생을 관통한 한 발의 탄환
그 고통과 기쁨의 황홀한 상처
참담하고 아름답다
그것으로 족하다
먼 후일 문학사에 이름 석 자 오르건 안 오르건
나와는 상관없는 내 존재 밖의 일이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위난한 시대를 이름 없이 살다가는
시인일 뿐…
자애자족하며 한 시대 풍랑의 바다를 건너간다
한국 여류시인 1세대 홍윤숙(79) 시인이 15번째 시집 ‘지상의 그 집’(시와 시학사 발행)을 냈다. 시인으로 산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했고 적막하면서도 충만했었던” 57년 세월에 대한 회고와 자성(自省), 운명 앞에 옷깃 여민 정갈한 자족(自足)의 시들이다. 그는 ‘다시 시집을 엮게 될 것같지 않다’고 했지만, 그 말 역시 운명에 대한 시인의 겸양으로 들린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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