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적 책임을 느낀다."공직자가 일을 잘못 처리했거나 처신에 문제가 있었을 때 택하는 도의적 책임론은 유교문화권 사회에서는 미덕으로 인식돼왔다. 법적으로 잘못이 없는 한 어지간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서구 문화에 비교해 우리의 도의적 책임론은 '선비정신'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한승주 주미 대사가 최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주최 리셉션 대신 부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한 대사가 구두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고 노무현 대통령에 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청와대가 일단 부인했으나, 그가 사의 표명설이 나올 정도로 책임을 느낀다고 말한 대목은 도의적 책임론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들여다보면 도의적 책임론이나 '선비'같은 처신으로 호평하기가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한 대사가 그만두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청와대 설명대로 그가 이번에 사의 표명을 하지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외교부 주변에서는 "한 대사는 노 대통령과 코드가 안 맞는다" "한 대사가 고대로 돌아가 내년에 정년퇴임을 하고 싶어한다"는 귀엣말이 나돌고 있다. 더욱이 "미국이 한 대사를 원해서 할 수 없이 시켰다"는 뒷말까지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주미 대사가 마지못해 일을 하고 있는데도 노 대통령은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할 수 없이 그대로 두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설령 이런 얘기들이 과장됐다 해도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면 이는 중대사안이다. 한 대사는 이런 억측들이 떠돌지 않게 재직할 동안에는 나라 일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고성호 국제부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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