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25일 백혈병을 앓던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뉴욕에서 작고했다. 향년 68. 한국 독자들에게 사이드는 특히 '오리엔탈리즘'(1978)의 저자로 유명하다. 사이드는 이 책에서 유럽과 북미의 백인들이 그 이외의 지역에 대해 구성해낸 사고방식과 인식의 틀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로 개념화한 뒤, 영국·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서부터 미국의 제3세계 정책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제국주의 정책에 오리엔탈리즘이 어떤 기능을 수행했는지를 살폈다.사이드의 저서를 통해 크게 대중화하기는 했으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는 근세 이래 유럽 문학·예술에서 동방(東方)취미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사용돼 왔다. 오리엔탈리즘은 낭만주의의 한 표징인 '먼 곳에 대한 동경'(Fernweh), 곧 이국취미의 한 경향이었다. 18세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지의 상류사회에서 유행한 시누아즈리(중국취향)나 튀르크리(터키취향)가 그 예다. 이런 본래의 오리엔탈리즘은, 사이드가 개념화한 오리엔탈리즘과 마찬가지로, 왜곡된 환상 속에서 오리엔트를 동경하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타자화하고 주변으로 밀쳐내는 배제의 감수성에 떠받쳐져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그리스와 서아시아 지역을 의미했던 오리엔트(오리엔스: 해가 뜨는 방향, 동방)는 중세 이래 그 외연이 점차 확대돼,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의 대상으로서의 오리엔트는 유럽계 백인사회를 제외한 나머지 전지역을 의미하게 되었다.
예루살렘이 고향인 사이드는 어린 시절 가족을 따라 이집트로 이주해 성장했고,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의 영문학 및 비교문학교수로 오래 재직한 그는 좁은 뜻의 문학의 틀을 넘어서 문화이론가이자 정치평론가로서,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대한 견결한 옹호자로서 정력적인 지적 활동을 펼쳤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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