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식어버린 경기를 데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효과가 별로 나타나지 않고 기업인들로부터도 정책 실효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의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경기활성화대책에 대한 기업인식’을 조사했더니 ‘매우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3.6%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다소 효과 있지만 심리적 효과에 불과하다’(70.0%)거나 ‘전혀 효과가 없다’(26.4%)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활성화정책에 대한 전반적 평가에서도 ‘부정적’(48.6%) ‘잘 모름’(35.5%)이 ‘긍정적’(16.9%)보다 많았다.
이 같은 조사결과는 참여정부의 핵심 브레인 중의 한 분이 며칠 전 금융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참여정부의 비전과 정책과제’라는 주제발표 내용과 거리가 멀다. 그는 “참여정부의 1년반은 도처에 지뢰밭이요, 처처에 가시덤불이었다”고 그간의 어려움을 피력한 뒤 각계에서 제기되어온 7가지 대표적 경제위기론에 논리적 타당성이 결여돼 있음을 반박했다. 7가지 경제위기론은 일본형 장기불황 우려, 남미형 경제침체 가능성, 제조업 공동화, 분배 우선정책에 대한 우려, 반시장주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국가경쟁력 약화 우려 등이다.
경제위기론은 사실일 수도 있고, 과장된 것일 수도 있으며, 잘못 짚은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그의 반박 역시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각계에서 경제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위기에 봉착하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성격이 강하다. 위기론의 실체가 사실이라면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과장된 것이거나 잘 못 짚은 것이라면 그런 사태가 오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취지다.
정부가 하는 일마다 핵심에서 벗어나 변죽만 울리고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안 자체의 복잡성보다는 정책의 일관성, 철학, 여론수렴 등 필수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특히 경기 활성화정책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기업의 역할과 속성을 감안하지 않은 탓이 크다.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 첫날 재계총수와 경제5단체장 등과 가진 간담회에서 “외국에 나와보니 기업이 바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고 피력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노 대통령은 “밖에 나와보니 나라경제가 기업 따로 정부 따로가 아니고 함께 손잡고 뛰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며 “여러 과제가 있지만 먹고 사는 게 첫째로, 경제는 결국 기업이 한다. 나와보니 더 실감난다”고 털어놨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식변화는 카자흐스탄ㆍ러시아 순방의 정치외교 및 경제적 성과 못지않은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우리나라의 선두 기업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키워왔고 세계 시장 장악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 추진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수립과 개발투자, 인재 양성, 여론 수렴, 과감한 추진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싸구려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현대자동차가 어느새 세계 톱5 진입을 목표로 할만큼 성장한 것도 기업 특유의 강인한 생존본능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이 잘 굴러가도록 도와주는 한편 기업의 역동적 시스템을 국가경영에 도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윤을 좇는 기업의 무한 욕심을 적당히 제어하고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퍼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순방에서 얻은 노 대통령의 깨달음이 정책으로 반영되길 기대한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