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저도 많이 부드러워졌죠?"최민식은 얼음과 불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는 배우다. 선한 눈매에 불꽃이 튀는 순간 관객은 그 이질적 조합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순박하고 소심한 깡패, 시대와 불화했던 천재 화가를 거쳐 15년간 쌓은 분노를 망치로 털어내려 했던 그가 이번에는 트럼펫을 들었다.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인생의 패배자로서 쫓기듯 강원도 탄광촌에 찾아 들어 바람찬 강원 도계에서의 겨울나기로 봄날의 희망을 연주하는 최민식. “그동안 쌓인 무거운 이미지를 씻어내려고 ‘꽃봄’을 했어요. 자기만의 색깔이 있는 성격파 배우가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지만,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다양한 인물을 보여주고 싶어요”
최민식이 연기 전환점으로 삼은 ‘꽃봄’은 사람냄새가 난다. 피비린내로 가득한 지옥도 ‘올드 보이’와는 다른 수채화 같은 영화다. 날카롭지만 달콤하고 고독하면서도 따사롭게, 트럼펫을 빼닮은 연기를 보여준다. “촌스러움으로 다가오지만 유채꽃처럼 은은하고 된장국처럼 구수한 영화예요” 관객의 눈길을 ‘확’ 끌만한 자극적 요소 하나 없는데도 그는 관객과의 소통을 확신했다. “젊은 사람 기호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영화죠. 그러나 결국 한국사람 특유의 정서와 잘 맞아 들것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이 덜 든 영화였다지만, 최민식에게 트럼펫 연주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처음 입에 대고 두 달 동안 삑 소리 한번 못 냈어요” 다행히 크랭크 인을 바로 앞두고 소리가 터졌다. 속 꽤나 썩었지만 ‘연이 테마’와 ‘다시 처음으로’를 직접 연주할 정도로 트럼펫과 가까워졌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는데 ‘꽃봄’ 덕분에 심신을 달래줄 친구 하나 얻었다는 그에게 트럼펫과 마찬가지로 관악부 지휘는 생소한 분야. “달리 모델로 삼은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제 방식대로 지휘했어요.”
1989년 드라마로 옮기기 전, 연극무대에서 설 때는 ‘꽃봄’의 이현우 보다 더 궁핍했던 시절이었다. “버스 토큰 몇 개에 담배 한 갑이면 만사 오케이였죠” 돈과 인연이 없으리라 생각하며 살았단다. 그래도 인생에 불만은 없었다. 돈이 없어 불편하다고 느끼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고, 그 용돈의 대부분은 술값으로 치러졌다. “온 몸으로 부대끼던 그 시절이 지금의 저를 만든 자양분이 되었다고 봐요”
지난 17일 크랭크 인 한 새 영화 ‘주먹이 운다’ 서는 매맞으며 돈을 버는 중년의 사내 역을 맡았다. 정체성, 존재감 등 이 땅을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란다. 삶의 의지가 얼마나 숭고한가를 관객들이 느끼도록 하겠다는 각오다.
상에 대한 욕심도 없다. “영광의 레드 카페트(칸 영화제)를 두 번이나 밟았고, 자기가 주연한 영화들이 큰 상을 받았는데,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 있겠냐”는 것이다. 상이란 부질없다고 말하는 최민식이지만 “표현해내고 싶은 인물이 너무나 많다” 며 연기에 대한 욕심만은 감추지 않았다. “연기 이외의 다른 길요? 곁눈질할 틈도 없어요”. 쿨룩거리는 기침사이로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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