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곡가 헤르베르트 빌리(Herbert Williㆍ48)가 한국에 왔다. 일본 도쿄에서 뉴저팬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자신의 트럼펫협주곡을 아시아 초연하는 것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들러 22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특강을 두 시간 앞두고 학교 앞 야외 카페에서 만난 그는 청명한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즐기는 표정이었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접경의 알프스 산 속 몬타폰 계곡의 오두막에 살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그는 ‘한국의 가을이 몬타폰과 똑같아 꼭 집에 온 듯하다’고 했다.그는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빈필, 베를린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 특급 교향악단과 클라우디오 아바도, 오자와 세이지,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 등 거장 지휘자들이 그의 작품을 연주했다. 빈필은 창단 150주년 기념작을 그에게 위촉해 1999년 그의 작품 ‘만남’(Begegnung)을 초연했고, 스위스의 취리히 오페라극장은 1996년 오스트리아 건국 1,000년 기념작으로 그의 오페라 ‘잠자는 형제’(Schlafes Bruder)를 초연했다. 199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빈 필을 후원하는 비엔나악우협회의 2002/2003 시즌 상주작곡가이기도 하다. 뉴욕의 카네기홀,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 비엔나의 무지크페어라인 등 최고의 홀에서 그의 작품이 연주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몬타폰은 최고 3,000m 이상 설원과 빙하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곳이다. 거기서 그는 침묵의 소리를 찾아 자연 속을 끝없이 거닐며 작품의 영감을 얻는다.
“내 삶과 작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고요함입니다. 그러한 고요와 적막을 찾아 며칠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숲 속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깊은 곳, 몸 속에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지요. 그 순간 이성적 판단이나 분석은 사라지고 나를 둘러싼 자아와 이성의 막을 벗어나 무한한 우주와 연동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면서 내 몸 전체에 음악이 아닌 어떤 세포도 존재하지 않게 되지요. 나는 그걸 작곡합니다.”
중세 신비주의자나 선승의 느낌을 풍기는 이런 말은 서양식 합리주의는 불완전하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분명 서양인이지만, 사리분별을 떠난 완전한 지혜를 추구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2008년에는 그가 살고 있는 몬타폰에서 그의 이름으로 페스티벌이 열린다. 해발 2000m 산정에 있는 콥스 호수에 짓고 있는 유럽 최대 수력발전소 완공에 맞춰 그의 음악을 중심으로 열리는 행사다. 이 댐은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유명한데, 오스트리아 정부는 여기서 공연하고 싶다는 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의 요청을 다 물리치고 그를 선택했다. “빌리가 원하는 음악이면 뭐든지 해도 좋다”는 조건이다.
그는 28일 떠난다. “그 동안 한국의 고요를 찾아 어디론가 산 속으로 들어가 지낼 예정”이라고 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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