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관료집단 가운데 옛 재무부만큼 구성원들간에 관계가 끈적끈적했던 곳도 드물다. 부처의 영문 이름에 ‘마피아’를 붙여 ‘모피아’라는 별칭이 생겨났을 정도다. 재무부만큼은 아니지만 옛 경제기획원도 엘리트의식을 기반으로 한 결속력이 남달랐다. 이들은 공무원 옷을 벗은 후에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금융, 산업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중요한 자리들을 꿰차고 있다.그런 범 ‘모피아’들 사이에 요즘 험한 말들이 튀어나오고 있다. ‘모피아’ 출신으로 민간기업의 장을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얼마 전 사석에서 이런 불만을 털어놓았다.
“경제부처 사람들은 원래 일의 특성상 거의 모두 보수, 아니 극우일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 사람, (여당의원으로)국회에 들어가더니 하루 아침에 왼쪽으로 확 돌았어요. (1인당 국민소득)2만 달러가 될 때 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볼륨(경제규모)을 키워야 한다던 사람이 이젠 나눠 갖자고 외치고 있으니.” 그는 “시장주의자라고 자처했던 그 선배는 부동산(규제정책)처럼 아예 거래를 틀어막는 정책에 동조하고 있어요. 그 가면들이 너무 메스꺼워요”라고도 했다.그 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른쪽에서 서 있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의 명단을 죽 늘어놓았다.
이 푸념은 별로 새롭지는 않다. 70년대와 80년대 군사정권 때도 이미 숱하게 겪었던 일들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처세와 변신을 온통 못된 짓이라고 몰아 붙일 수도 없다. 다만 자리 보전과 위치 상승을 위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경직된 상황이 성격만 바뀌었을 뿐 군사정권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무섭다.여전히 적과 동지의 이분법을 선호하고 비판을 ‘불순한 의도’라고 내치는 통치권자 겸 인사권자가 존재하는 환경에서 제 목소리 내기는 위험부담이 너무 큰 모험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정찬용 인사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사람들이 최근 미국 GE의 연수원을 찾아 1박2일 동안 연수를 받은 점은 꽤 흥미롭다. GE는 자산의 값어치가 우리나라가 한 해에 벌어들이는 돈 전부와 맞먹는 5,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기업복합체다.은퇴 후에도 ‘경영의 달인’이라는 칭송이 자자한 잭 웰치가 20년 동안 이끌었던 그들 조직의 경쟁력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청와대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웠을까.GE는 명성에 걸맞게 특장점이 꽤 많은 기업이다. 그 중에서도 부서간, 상하 간의 벽을 없애고 안팎의 비판과 변화를 왜곡됨 없이 수용하는 것은 물론 적의 장점 조차 받아들일 수 있도록 훈련된 조직문화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잭 웰치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를 ‘영역 파괴’라고 했다. 웰치는 간부들에 대한 평가에서도 ‘열린 사고’를 가장 앞세웠다.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부하 또는 외부의 비판과 건의를 무시하고 독단적인 간부는 낙제점을 받았고 회사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잭 웰치는 이런 부류를 ‘조직을 죽이는 사람(killer)’이라고 규정했다.
어느 조직이건 ‘조직을 죽이는 사람’은 존재한다. 정권 안에도 존재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권의 고위층 또는 최고위층이 그런 부류라면 백성들에겐 끔찍한 일이다. 청와대 사람들은 그곳에서 GE의 이런 열린 문화를 전수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주변, 위 아래와 공유하기를 희망한다.굳이 GE라는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청와대 사람들이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아집에서 벗어나 사고의 틀을 바꾸는 것이 생존을 위한 상식적인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김동영 사회2부장 dy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