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마다 민주주의를 내세웠지만, 누가 그 시대를 움직이는가에 따라 민주주의는 이름 혹은 반쪽에 그쳤다. 유신정권이 내세운 ‘한국적 민주주의’ 아래 대통령과 정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고, 언론에는 재갈이 물려졌다.87년 민주화 이후 새로운 언론이 속속 등장했지만, 신문시장에선 경쟁심화로 과점구조가 강화했고 과점신문은 여론 영향력을 키우면서 정권창출의 동반자가 됐다.그런데 과점신문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던 정당이 잇달아 정권창출에 실패하고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처럼 상황이 바뀌면서 달라진 과점신문을 최근 두가지 쟁점보도를 통해 볼 수 있다.먼저 국가보안법 개폐논쟁과 관련, 과점신문은 ‘대통령이 보안법 혼선 부채질하나’(중앙일보 6일자), ‘원로 비웃는 막된 행동거지 어디서 배웠나’(조선일보 13일자) 등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폐지주장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비판을 계속하면서도 ‘부분개정이 해법’(동아일보 15일자)이라는 조정안을 제시했고, 그 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조건부 수용입장에 대해 ‘여야 타협 가능하다’(중앙일보 21일자)라며 지지했다. 과점신문이 앞서 정치적 입장과 방향을 제시하고, 한나라당은 그 논리를 수용하고, 다시 과점신문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다음으로 방송위원회의 재허가추천 심의결과, SBS 등 9개사가 2차 의견청취 대상에 포함되자 일부 과점신문은 과잉반응을 보였다. ‘SBS 심사 탈락’이라는 오보를 냈고(그 후 ‘SBS 허가 재심’으로 수정), ‘군사정권의 방송탈취에서 배운 수법인가’(조선일보 15일자)라고 질책했다. 그러자 이튿날 한나라당은 민영방송 장악음모 진상조사단을 만들고, 방송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 방송현안에 대해 조선일보가 성격을 규정하고 대응방향을 제시하자, 한나라당이 이를 수용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이러한 보도로부터 과점신문이 정책현안에 대해 단순히 뉴스를 제공하고 여론을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정치권력이 되어간다는 가설이 제기된다. 주요 배경은 두가지다. 먼저 한나라당이 기득권에 안주하고 소모적 정쟁으로 지적 지도력을 상실하는 등 체질이 약화하면서, 지지확보를 위해 과점신문의 여론몰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다른 하나는 과점신문은 그간 유사한 입장을 취해온 한나라당이 정체된 신문산업 개선에 요구되는 방송, 뉴미디어 등 사업진출 전망에 기여할 여지가 당분간 줄어든다고 판단해 직면할 위기 타개를 위해 대통령, 여당과 대립구조형성에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점신문의 권력화와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의존 심화는 정작 정치의 주체인 시민의 건강한 인식을 미혹하고 방해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정적인 현상이다. 과점신문이 이런 가설을 부정하려면 반복된 권력지향적 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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