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9월23일 미국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이 뉴욕에서 태어났다. 1974년 졸(卒). 리프먼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뒤 1914년 잡지 뉴리퍼블릭 부주필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고, 1921년 뉴욕월드로 자리를 옮겨 논설 담당 기자로 일하며 이름을 얻었다.그러나 그가 미국 바깥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량급 언론인으로 성장한 것은 1931년 뉴욕헤럴드트리뷴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리프먼은 1966년 은퇴할 때까지 이 신문의 ‘오늘과 내일’ 난을 담당하며 시대의 관찰자 겸 조언자 노릇을 했다.
월터 리프먼이라는 이름에서 사람들이 대뜸 떠올리는 말은 ‘냉전’이다.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사회주의 진영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ㆍ이념적 갈등이나 군사적 수준의 잠재적 투쟁을 가리키는 ‘냉전’이라는 용어는, 누가 이 말을처음 고안했든, 리프먼이 1947년 ‘냉전’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 대중화되었다.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에 이어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차례로 붕괴하면서 마무리된 냉전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전쟁이라는 애초의 함의와 달리, 수없이 많은 국지적 열전으로 이뤄진 의사 세계대전이었다.
미디어 이론가로서 리프먼이 이룬 두드러진 업적 하나는 ‘의사환경’ 개념의 수립이다. 리프먼은 1922년에 출간한 저서 ‘여론’에서 매스미디어가 활자나 영상 같은 상징을 통해 만들어내는 간접적 환경이 많은 경우에 직접적 환경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런 간접적 환경을 의사환경이라고 불렀다.불연속적인 상징이 연속적인 세계를 고스란히 재현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의사환경은 저널리스트의 악의가 개입되지 않는 경우에도 리프먼이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부른 과정을 통해 실제 환경을 다소 왜곡하게 마련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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