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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IAEA 사찰로 본 '한국 원자력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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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IAEA 사찰로 본 '한국 원자력 현주소'

입력
200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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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0.2g과 플루토늄 0.08㎎의 진실게임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무대에 올랐다. 국내에서 행해진 우라늄 분리(2000년 1~2월) 및 플루토늄 추출(1982년 4~5월) 실험과관련, 현재 IAEA가 2차 조사(19~26일)를 진행 중이며 북한과 중국도 한국의 핵물질 실험을 6자 회담과 연계할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실험이 일부 과학자들의 학문적 탐구심 차원이라고 누차 강조하며 핵 투명성에 한점의 오점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국제적 시선은 그렇지 않다. 아울러 IAEA 이사회도 “11월 차기 이사회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힌 만큼 당분간 원자력 실험에 대한 뉴스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원자력계 전문가인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이은철 교수, 한국원자력연구소 정책연구부 오근배 부장, 통일연구원 전성훈 선임연구위원의 좌담을 통해 이번 사찰의 의미와 앞으로 원자력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검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 참석자들은 “연구 목적의 원자력 연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면서도 “이를 위해 범 정부적인 외교적 노력은 필수”라고 입을 모았다.좌담은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공대에서 진행됐다.

IAEA 사찰, 국제적으로 큰 관심 끈 이유

전성훈= 한반도가 북핵 문제로 이미 뜨겁게 달궈져 있는 탓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핵무기를 개발하고 싶은 유혹을 갖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길이 많은 상황에서 과거에 신고되지 않은 원자력 관련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이 국제사회의 집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일부 외신에서는 아예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한다’는 전제를 깔고 보도를 했다.

오근배= 평화적 이용과 무기로서의 이용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원자력의 양면성 때문에 연구소가 우리가 아무리 순수 연구목적이라고 설명해도 국제적 관심과 우려는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 BBC 보도는 아예 처음부터 이라크 핵 문제에 써온 ‘악한(rogue)’이라는 단어를 사용, 우라늄 분리 실험의 의도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언론에 ‘핵’,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추출’ 등의 용어가 난무하면서 의혹은 더욱 확대됐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범주에는 ‘핵’이라는 말을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핵 실험’, ‘핵 연료’라는 단어가 구분 없이 사용된 것도 문제다.

이은철= 외신에 우리가 한 일이 마치 핵 무기 제작을 위한 실험이었던 것처럼 비쳐졌다. ‘농축’이라는 단어에서 무조건 핵무기를 연상하는 선입견도 잘못이다. 농축은 우라늄 뿐 아니라 다른 금속에서도 행해지는 실험의 한 방법일 뿐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의 준비는 어땠나

이= 북핵이라는 특수한 변수가 있는 이상 우라늄 분리 실험이라는 민감한 사항이 처음 대두됐을 때 정부의 대처가 너무 안이했다는 생각이다. 원자력 연구ㆍ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투명성은 과학자들의 책임이 아니다. 이들은 연구에만 전념하면 된다.요즘 예로 많이 드는 일본은 우라늄 농축, 재처리 시설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도 국제 사회의 신뢰를 확보했다. 수십 년 동안 수상이 몇 차례 바뀌면서도 일관된 외교적 노력을 거듭한 결과다. 국제사회에서의 핵 투명성 확보는 외교통상부에서 담당할 몫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외교부에는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없다.

전= 외교부에서 원자력 문제를 담당하는 곳은 군축원자력과다. 그러나 이 과에 원자력을 다루는 관리는 2~3명에 불과하고 이들 역시 원자력에 대한 전문 지식이 전혀 없다. 그나마 1~2년에 한번씩 바뀐다. 반면 일본 외무성은 원자력과 설치, 60명이 넘는 전문가가 국제적인 핵투명성 확보를 위해 뛴다. 사전에 국제적인 지지층을 사전에 확보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서도 정부는 사실상 별 힘을 쓰지 못했다. 핵 문제에 있어 우리의 강력한 우방이라고 여긴 미국과 일본이 이번 건에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은 것은 사전 정지작업이 전혀 돼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IAEA 조사단, 향후 어디에 초점을

오= IAEA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은 하나도 없다. 외신이 확인되지 않은 출처를 통해 보도를 하고 그것을 우리 정부와 언론이 따라가는 식이다. 말하자면 소문과 열심히 싸우고 있는 셈이다. 사찰단의 2차 조사는 잘못된 것을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고한 것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외신에서 IAEA 고위 관계자를 언급하며 우리나라 연구 내용을 보도했는데 국가보고서는 분명 기밀사항이다. IAEA 관계자가 이 내용을 발설했다면 이는 고발 대상이다.

이= 우라늄 분리 및 플루토늄 추출 실험이 순수 연구 목적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는 없다. 현재 IAEA가 짚고 넘어갈 만한 가장 큰 문제는 실험 과정에서 유실했다는 12.5㎏이다. 연구소에서도 손실분을 열심히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사라진 우라늄을 찾는 일은 쉬운 작업이 아닐 것이다. 80년대에는 연구소가 학교 실험에 쓰라며 우라늄 조각을 떼어 기증하기도 했고 연구자들도 우라늄 금속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거리낌없이 주고 받기도 했다. 핵물질에 대한 인식이 크게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전= 우리나라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것은 1975년이다. 82년이면 실험내용을 신고한다는 개념 자체가 형성되기 전이다. 국제사회의 원자력 연구에 대한 잣대가 까다로워진 것도 90년대 이라크 핵 문제가 대두된 이후의 일이다. 엄격해진 잣대를 20년 전 실험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사실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연구ㆍ개발 수준은

오= 우리나라의 원자력 연구수준은 세계 5~6위를 다툴 정도로 높다. 그러나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농축과 재처리 자체를 금지한 이후 원자력 연료주기에 두개의 큰 구멍이 뚫렸다.당연히 핵무기 개발은 불가능하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비핵화 선언의 이 조항 앞에 ‘군사적’이라는 말을 더해 ‘군사적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시설을 금한다’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후 13년 동안 한번도 이에 대한 문제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원자력 개발에 무관심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원자력에 대한 순수한 연구는 국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건으로 이런 연구들이 무기 개발과 혼동돼 매도 당하고 있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세계 최고 수준의 핵 개발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연구실에서 행해진 0.2g의 우라늄 분리 실험 때문에 국제사회가 이토록 들썩이는 것은 우리나라 외교력의 문제다. 이번 건으로 연구실의 과학자들이 더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원자력,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전= 미국 중국 러시아는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일본도 기술적인 능력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더해 대만도 중국과의 적대감으로 핵 개발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핵 문제에 관한한 세계에서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다. 이런 특수성과 함께 원자력 기술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정부 차원에서 일본의 몇 배에 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정부가 18일 발표한 ‘평화적 핵 이용 4원칙’은 급하게 준비돼서인지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있다. 또한 진지하게 원칙을 준비했다면 핵이 아니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원칙‘이었어야 옳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범위를 확대해 나간다는 마지막 항도 구체성을 띄어야 한다. 연구소 등에서 향후 안을 마련 중이겠지만 예를 들어 ‘농축은 10% 이상 하지 않겠다’, ‘재처리는 남북 관계가 좋아질 때까지 하지 않고 대학에서만 기초연구를 진행하겠다’ 등 명확하고 투명한 범위를 명시해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

오= 이번 일을 전화위복 계기로 삼아 원자력 이용 개발 확대 방안에 대해 연구소에서 구체적 안을 마련 중이다. 또한 연구소에 있는 과학자들도 국제 사회의 기준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더욱 힘쓰겠다.

정리=김신영 기자 ddalgi@hk.co.kr

사진 최흥수 기자

좌담자 프로필

◆이은철

▲57세ㆍ서울대 원자력공학과

▲ 미국 메릴랜드대 원자핵공학 박사

▲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오근배

▲ 50세ㆍ서울대 핵공학과, 동대학원 박사

▲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 미국 미시간대 핵공학과 객원연구원

▲ 한국원자력연구소 정책연구부 부장

◆전성훈

▲ 42세ㆍ고려대 산업공학과

▲ 미국 스탠포드대 석사, 캐나다 워털루대 박사

▲ 통일연구원 교류협력연구실장, 경제협력연구실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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