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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어질고도 어지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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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어질고도 어지신 선생님

입력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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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서 붓글씨를 써보았다. 당연히 잘될 턱이 없다. 종이 몇 장을 버린 다음, 저절로 고등학교 시절 서예시간(2학년 때 미술시간)이 떠올랐다. 문방사우라고 붓, 벼루, 먹, 종이를 서예시간마다 준비해야 한다.종이는 연습할 때부터 귀한 한지를 바로 쓸 수 없어 신문지를 사절로 잘라서 묶어 오라고 했다. 신문지를 사절로 자른 크기가 매일 가방에 넣어 다니는 주산문제집과 꼭 맞았다. 그러잖아도 무거운 가방에 도시락 무게와 맞먹는 벼루를 넣으면 더욱 무거워져 처음부터 그것은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벼루가 없으니 먹도 필요가 없고 물통도 필요가 없다.그러다 보니 서예시간 내가 책상 위에 꺼내놓는 것은 다음 시간에 쓸 주산문제집과 미술반 친구에게서 빌린 검은색 포스터컬러와 좀 굵은 그림붓 한자루다.

그 실력으로 30년이 지난 다음 어디에 전시할 내 소설의 앞부분을 써보는데, 이건 글씨가 아니라 삐뚤 빼뚤 완전히 그림이 되고 만다. 돌아보니 준비물을 그 따위로 챙기고도 매를 맞지 않고 학교를 다닌 걸 보면 그때 우리 미술 선생님, 참 어지셨던 것 같다. 나 같으면 반 잡아놓았을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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