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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수빅

입력
2004.09.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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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동안 미군의 기지였다. 바다는 거대한 군함들의 위용에 푸른 미소를 잃었고, 거친 야성을 내뿜던 정글은 차가운 철조망에 갇혀 잔뜩 몸을 웅크려야만 했다.티없이 맑은 하늘은 하루에도 숱하게 날아다니는 전투기들의 낙서질로 일그러졌다. 1991년 피나투보 화산 대폭발 이전까지, 필리핀의 수빅은 ‘천혜의 요새’가 겪어야 할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았다.92년 미군은 쏟아져 나온 화산재가 기지를 뒤덮자 서둘러 수빅을 떠났다.그러자 필리핀 정부는 이 곳을 특별경제자유지역으로 선포,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길을 닦고, 막사를 개조해 호텔과 상점으로 만들었다. 미군의 흔적이 점점 지워지자, 때묻지 않은 자연에서 모험과 휴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로 생기를 되찾았다. 천혜의 요새는 그렇게 ‘천혜의 관광지’로 다시 태어났다.

▲정글로 갈까

제스트 캠프는 원주민 ‘아야따’족이 미군에게 정글 생존법을 가르치던 곳이다. 베트남전에 투입되는 미군들의 필수 훈련코스였다고 한다. 칼 한자루와 대나무만으로 순식간에 불을 피우고, 그릇과 컵을 만들어 내는 원주민의 시범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대나무에서 추출한 물을 마셔보는 것은 덤. 이것이 싱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원주민과 함께 2일 동안 정글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엘카바요 승마장에 가면 미끈한 말들이 여유롭게 풀밭을 거닌다. 이 중 맘에 드는 한 녀석을 잡아 정글로 들어간다. 밀림 속은 이따금 새소리만 들려올 뿐 적막 그 자체다. 얼마를 갔을까. 열매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던 ‘프루트 박쥐’가 갑자기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전진. 온갖 희귀한 나무들에 눈길을 빼앗기다보면 어느새 목적지인 폭포에 도착한다. 말과 물을 나눠 마시고 다시 내려오면 1시간이 훌쩍 지난다.

수빅의 동물원은 숲 한가운데 있다. 주빅 사파리라 불리는 이곳엔 약간 끔찍한 체험이 기다린다. 일명 ‘호랑이 먹이주기.’ 산 닭을 든 직원이 차에 오르면 모험은 시작된다. 그런데 차에 붙은 쇠창살이 어린아이 주먹 하나가 드나들 정도로 성글다.호랑이가 앞발을 들이밀면 금방이라도 뚫릴 것 같다. 달리던 차가 멈추고 직원이 빼꼼이 문을 열고 닭을 살살 흔든다. 관광객들이 어서 문닫으라며 아우성쳐도 직원은 꿈쩍도 않는다.

두 눈을 부릅뜨고 한참을 노려보던 호랑이가 느닷없이 돌진해 앞발을 창살에 짚더니 날카로운 송곳니로 순식간에 닭을 낚아챈다. 괴성을 지르던 사람들, 어느새 반대편 창에 다 몰려있다. 심장이 약한 사람이나 어린이는 금물이다.

다음은 경비행기로 피나투보 화산 둘러보기. 1991년 6월15일 대폭발로 9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의 진원지 피나투보는 이제 수빅이 자랑하는 대표적 관광지가 됐다.

거대한 화산의 분화구를 굽어보며 자연의 위력과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는다. ‘이 평화롭기 그지없는 자연을 그토록 화나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상념에 잠기는 찰나, 비행기가 갑자기 아래로 고꾸라진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놓아버린 것. 너무 놀란 관광객,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한다. 능숙한 조종사의 간담 서늘한 곡예비행은 또 다른 묘미다.

▲바다로 갈까

오션 어드벤처에서는 돌고래와 물개가 한바탕 신나는 재롱을 부린다. 일반돌고래쇼가 실내에서 펼쳐지는 반면 이 곳은 탁 트인 바다가 무대다. 그물만 빙 둘러 쳐놓은 곳에서 조련사가 돌고래를 타고 물살을 가르더니 돌고래와 함께 바다위로 솟구쳐 오른다.

수빅 바다에서의 스킨 스쿠버는 좀 색다르다. 형형색색의 물고기와 산호 말고도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2차 대전 당시 침몰한 19척의 난파선이 그것이다.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배를 이리저리 둘러보면 짜릿하면서도 으스스한 공포가 밀려온다.

해변에는 이밖에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패러 세일링 등 각종 해양 스포츠가 숨 쉴 틈 없이 펼쳐진다. 해질 무렵, 붉은 석양이 바다를 비추면 물비늘이 금빛으로 너울거린다. 유유히 떠가는 요트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눕는다. 눈부신 낭만. 영화가 따로 없다.

■내달 7일 직항 개통되면 인천서 3시간

상주인구 3,000명인 수빅의 또 다른 자랑은 안전. 면세지역이라 필리핀 현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이다. 밤에도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다. 면세점이 많지만 명품이나 비싼 물건 대신 생필품을 주로 판다. 시내에서 갈 만한 곳은 필리핀 전통음식 전문점 '제리스 그릴'과 새벽 3시까지 시원한 라이브 음악이 계속되는 야외 바 '피어 원'이다. 대표적 숙박 시설은 레젠다 호텔과 그란데 아일랜드 리조트. 레젠다 호텔은 수빅 관광지의 허브다. 모든 명소가 이곳에서 차로 20분 안에 있다. 수빅만의 섬에 자리잡은 그란데 아일랜드 리조트에서는 휴양과 해양 스포츠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세부 퍼시픽 항공(서울 사무소 02-3708-8530)이 10월7일 인천-수빅 직항 노선을 개통, 3시간이면 한국에서 열대의 남국을 찾아갈 수 있게 됐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2회 운항. 굿모닝 트래블(02-757-7776)과 코오롱 여행사(02-3701-4848)에서 10월 한달간 특별 할인된 가격인 35만원(3박4일)과 45만원(4박5일)에 패키지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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