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정보요원이 이스라엘을 위해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FBI의 조사를 받고있다는 뉴스가 얼마 전 보도됐다. 미 CBS 방송이 처음 전한 사건의 개요는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차관실에 파견된 국방정보국(DIA) 베테랑 요원이 이란에 관한 비밀정보를 이스라엘에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동맹 공동의 적에 관한 정보유출에 착안한 우리 언론은 로버트 김 사건에 비유하기도 했으나, 달리 주목할 뉴스는 아닌 듯 보였다.그러나 월간 워싱턴(Washington Monthly)지의 후속보도는 흥미롭다. 이 정보요원은 이란 정권 전복을 위해 이스라엘 정보기관 및 이란 반정부세력과 비밀공작을 벌였다는 것이다. 또 사건이 불거진 것은 페이스 국방차관 등 대 이란 강경파와 국무부 및 CIA 온건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지난해 공작 일부가 폭로돼 상원 정보위원회가 조사했으나, 민주당의 선거책략이라는 공화당의 반발 때문에 본격 조사는 11월 대선 뒤로 미뤘다고 한다.
이것만으로 사건의 실체를 헤아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에 앞서 이란과 연관된 또 다른 의문의 사건이 언론에 집중 보도됐다. 이라크 임시정부수반 아마드 찰라비와 정보총책 아라스 하비브가 미군 작전기밀을 이란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가 있어 미군이 찰라비 집을 수색하고 하비브를 수배했다는 것이다. 후세인 시절 미국에 망명한 찰라비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증언으로 미국이 전쟁명분을 쌓는 데 공을 세웠고, 국방부 쪽의 강력한 후원으로 임시정부수반에 오른 인물이다.
당시 미국과 찰라비는 혐의자체를 부인했으나, 익명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한 후속보도가 난무했다. 이에 따르면 찰라비와 하비브는 오래 전부터 긴밀한 관계인 이란의 사주를 받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거짓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 이로써 이란은 미국의 힘을 빌어 숙적 후세인을 간단히 제거한 셈이다. 이들은 또 최근 미군이 이란의 통신암호를 해독한 것을 비롯해 이라크주둔 미군 동향을 소상하게 이란에 알려, 미국의 침공에 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였다.그러나 찰라비가 아직 건재한 것을 보면, 권위 있는 언론까지 쏟아낸 폭로성 보도의 진상은 오리무중이다.
두 사건에 얽힌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객관적으로 두드러지는 사실이 몇가지 있다.
첫째는 이라크 전쟁과 이란 핵문제 등 국제 이슈의 배후에는 늘 갖가지 정보공작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런 비밀공작이 미국과 국제 언론에 폭로되는 데는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정부 내 갈등뿐 아니라, 민주 공화 두 당의 정략이 가세한다는 점이다.넷째는 공작 비화나 갈등설 보도가 정책 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역정보 공작인 경우도 흔하다는 사실이다.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국제적 논란을 유도하기 위해 이른바 외곽을 때리는 교묘한 정보공작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로 엇갈리는 이런 요소들은 대개 중첩적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핵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의 경우, 강온 정책을 놓고 미 정부기관과 정파들이 갈등하는 면도 있겠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핵시설 폭격 등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미국의 강경입장과 유럽ㆍ러시아의 온건노선이 맞선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를 앞두고 폭로성 보도가 쏟아진 것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할 것이다. 결국 IAEA 이사회는 지난 주말, 미 대선 뒤인 11월 말까지 안보리 회부 등의 결정을 유보하는 타협에 이르렀다.
여기서 유념할 것은 핵문제 논란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핵의혹에 관한 폭로성 보도와 논란도 이라크나 이란의 경우처럼 교묘한 정치적 계산과 정보공작이 작용한 것으로 의심할 구석이 많다. 충격적 정보를 무작정 퍼뜨리거나 덩달아 떠들다 보면, 우리 자신을 궁지에 빠뜨리는 음모에 대가없이 가담하는 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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