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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6>소프트웨어 구하기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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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6>소프트웨어 구하기 대작전

입력
2004.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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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신호 전산화를 우리 힘으로, 그것도 최첨단 기술로 이뤄내기에는 국내 현실이 여의치 않았다. 김명년 서울시 부시장이 내게 전산화 얘기를 꺼낸 1978년 가을에는 일본에서조차 마이크로프로세스의 개념을 이해하는 이가 드물 정도였다.나는 교통 신호기 소프트웨어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전문가라는 사람은 모조리 만나다시피 했다.

78년 12월 중순 무렵이다. 구자춘 시장의 최종 결재를 받아낸 우리는 서울시에 입찰 제안서를 냈던 필립스 등 선진 외국 기업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가장 먼저 일본의 교상(京三)을 방문했다.당시 일본철도의 신호체계를 공급했던 이 회사 임원이 한 말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는 자기 회사의 교통신호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전자산업은 일본에 비해 50년은 뒤져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을 얼마나 형편없는 나라로 보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50년 전이면 전자산업이라는 단어가 나오기도 전이다. 그는 한국이 전자산업의 미개지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50년’이란 비유를 한 셈이다. 그 때의 내 심정은 “산업화는 뒤졌지만 정보화는 결코 뒤질 수 없다”는 요즘 표현과 비슷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에도 우리는 비전만큼은 일본보다 앞서 있었다. 박병소 박사가 마쓰시타(松下)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마이크로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하자 일본 사람들은 “그게 좋은 건 알겠지만 이제 갓 나온 만큼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교통 신호등은 사람 목숨과 직결되는데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쓰는 건 위험 부담이 크다는 논리로 일본 제품을 쓰라고 설득하려 들었다. 박 박사는“그때 일본에서는 마이크로프로세스를 응용하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며 나의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독일의 지멘스와 네덜란드의 필립스도 자기네들이 개발한 시스템을 팔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별 소득은 없었다. 그래도 견문을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됐다. 네덜란드에서는 교통신호 전문대학이 눈길을 끌었다. 이 학교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삼거리에서 육거리에 이르는 복잡하고 불규칙한 도로에서 가장 효율적인 신호등의 위치와 신호 통제 방법 등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서울에는 교통신호를 다루는 엔지니어가 한명도 없었다.

일본과 유럽에서 헛탕을 친 나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 넓은 미국 땅을 뒤지다 놀라운 행운을 잡았다. 우연히 미국 연방 정부가 교통신호기 소프트웨어를 개발, 주정부에 공짜로 배급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각 주마다 제 각기 시스템을 개발하자 혼란을 우려한 연방정부가 엄청난 예산을 투입, 통일작업에 나섰던 것.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당자를 찾아가그 소프트웨어를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수수료 200달러만 내면 몽땅 다 주겠다고 대답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기적이 이렇게 쉽게 일어나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기뻤다.

다음에는 박 박사와 함께 텍사스에서 마이크로프로세스를 사용해 교통 신호기를 만드는 ‘이글’이라는 회사를 찾아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술 전수는 물론 자기네 소프트웨어를 고쳐도 좋다고 흔쾌히 약속했다. 79년 여름이었다. 내 가슴속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용솟음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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