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중국 최고 권력자 장쩌민(江澤民·78)이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퇴진함에 따라 후진타오(胡錦濤·61) 시대가 활짝 열렸다.장 전 주석으로부터 당권(총서기)과 국가권력(국가주석)을 이어받은 후 주석이 군사위 주석직 승계를 통해 군권마저 장악한 것은 권력이양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권력 이양의 배경은 장 전주석의 퇴진 과정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최근까지 일각에서는 장 전주석이 군사위 주석 임기만료일인 2007년까지 퇴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했다. 그러나 올 초부터 표면화한 후 주석과 장 전주석간의 노선 갈등은 장의 퇴진을 재촉하는 계기가 됐다.
장 전주석은 후 주석의 경기과열 진정책, 온건한 기조의 대만 정책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 중국에 2개의 지도부가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후 주석으로서는 장 전 주석을 정리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결국 후 주석 등 4세대 지도부는 막후 정치라는 낡은 외투가 새 시스템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 올 7월부터 장 전주석의 퇴진을 밀어부친 것으로 보인다.
때를 맞춰 고령인 장 전주석의 심장병 악화설, 후두암 투병설이 베이징에 파다하게 나돌았다. 외신들도 중국 국영매체가 장 전 주석의 왕성한 활동을 최근까지 보도한 점으로 미뤄 그의 퇴진이 갑작스레 이뤄진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전하고 있다.
이번 승계는 중국 정치사에서 장쩌민 등 3세대 지도부가 권력 전면에서 물러나고 후진타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4세대 지도부가 독자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이는 또 항일, 공산혁명 세대들이 퇴장하고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성장한 세대에 의해 중국이 통치되는 질적인 세대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향후 후진타오 체제는 막후 정치를 청산하면서 정치의 투명도를 한단계를 끌어올 것으로 보인다. 과거 지도자들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지 못한 4세대 지도부로서는 당의 민주화를 통해 권력기반을 다질 수 밖에 없으며, 이 과정에서 장 전주석의 상하이방(上海幇) 등 특정 그룹의 권력 독점은 더 이상 용인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예상을 깨고 장 전주석의 오른팔인 쩡칭훙(曾慶紅)국가부주석이 군사위 부주석에 오르지 못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외신들은 체제정비를 완료한 후 주석이 자신이 견지해온 국가경영 전략을 급격히 수정하지 않으면서 실용주의적 노선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식 민주주의 요소 도입에는 분명한 선을 그을 것이 확실시된다.
중국 공산당이 장쩌민 퇴진의 계기가 된 16기 중앙위원회 4차회의(4중전회)를 통해 민주적 절차 강화를 통한 당 체질 개선을 결의한 것도 효율적인 공산당 지배 관철이라는 대전제하에서 출발하고 있다.
중국 건국 후 처음으로 무혈 권력 이양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지도부 교체가 1990년대 생전의 덩샤오핑(鄧小平)이 짠 각본대로 이뤄졌다는 점을 곱씹으면 이번 권력교체의 성격과 한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 대외관계 변화올까
새로운 후진타오 체제의 중국은 대만을 비롯해 한국 미국 일본 등 이해당사국들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까. 장쩌민 전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을 필두로 한 구세대의 영향력이 여전한 만큼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지만, 권력의 이동이 대외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상당하다. 후진타오의 중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거대 중국'을 지향할 것이라는 데는 거의 이견이 없다.
중국이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대미관계는 미국이 중국 위협론을 과대포장하지 않는 한 선택적 공조와 경쟁을 지속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미중관계는 지난해 3월 후진타오 주석이 정치의 전면에 나선 이후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협조하는 등 눈에 띠게 부드러워졌다. 중국은 특히 미국의 대테러전을 실질적으로 지지해왔다.
그러나 미중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양안(兩岸)관계는 여전히 속단하기 어려울 듯하다. 대만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체제의 등장으로 중국의 대대만 정책이 안정화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왔지만,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대만의 독립을 불허하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하나의 중국' 정책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오히려 시계바늘이 거꾸로 돌아가 중국이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만을 더욱 압박할 공산도 있다.
1972년 수교이래 정치적으로 최악을 맞고 있는 대일 관계는 다소 호전될 수도 있지만, 동북아의 두 강대국이라는 지정학적, 역사적 한계를 극복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최근 센카쿠열도 등 영토 분쟁에다, 역사인식 문제까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중국은 신사참배를 이유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방중을 수년째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후진타오 체제는 민족감정 보다는 실리를 우선시하는 '신사고'를 바탕으로 최소한 일본과의 정치적 화해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해 후진타오 정부 출범과 함께 더욱 공세적인 패권주의적 사회주의, 민족주의가 득세한 점을 감안하면,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휘청했던 한중관계는 조정국면을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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