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최완주 부장판사)는 17일 지난 대선 때 여야에 385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이학수(58) 부회장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압수된 채권 1,730장(138억원 상당)을 몰수했다.기업인 가운데 가장 많은 액수를 정치권에 건넸던 이 부회장에게도 집행유예가 선고됨으로써 탈세 등의 혐의가 추가된 SK 손길승 회장의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기업인 모두가 집행유예나 벌금의 ‘관대한’ 처벌을 받고 풀려났다.
재판부는 “불법자금 악용의 책임은 정치인뿐 아니라 이를 제공하고 이득을 누려온 기업인에게도 있다”며 “국내 대표적 기업의 임원으로서 가장 많은 돈을 치밀한 기획과 방법으로 전달한 것은 물론, 무기명 채권으로 자금추적마저 곤란하게 만들고 수사과정에서도 그 규모를 속이려 하는 등 다른 기업인에 비해 반성의 기미가 약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유력 대선후보측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던 점과 다른 기업인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형의 집행을 유예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선고 뒤 “항소할 계획이 없다”고 밝혀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 형이 확정된다.법원은 그 동안 기업인들을 관대하게 처분하면서 정치인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돈을 건넸다는 사정과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정경유착의 근절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큰데다, 법원 스스로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엄벌 방침을 천명했던 사실에 비추어 설득력이 낮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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