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문(1927~93년)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1956년 전란 후의 참람한 세월에 등단, 10년 남짓 동안 처절하리만치 순결한 저항의 언어들로 낯선 시의 미학을 남기고 간 불우한 시인이다. 그에게 시는 당대의 불의에 대결하는 무기였고, 그 전선에 선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으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도구였다.그의 시 전집 ‘내 노동으로’(솔 발행)가 나왔다. 한국전쟁 때 그는 비행장에서 풍선을 띄워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는 보직을 맡았던 듯하다.“몇 차례인가 풍선을 하늘로 띄웠으나 인간이라는 나는 끝내 외로웠고 지탱할 수 없이 푸르른 하늘 밑에서 당황했다. …내일을 위하여 신열을 위생하며 끝내 기다리던, 그러나 귀처(歸處)란 애초부터 알 수 없던 풍선들 대신에 머언 산령 위로 떠가는 솜덩이 같은 구름 쪽만을 지킨다.”(‘풍선기 1호’)
시인은 “산탄이 비 오듯 하는 산중턱에 담가(擔架)째로 유기되어버렸던 전상(戰傷)과 그 전상과 더불어 절제(切除)되어간 의식의 틈바구니에서…”(‘의족’) 당대 시단의 주류였던 서정 단시 위주의 미학주의를 거부하고, 역사와 현실의 증언대에 서서 직정(直情)의 긴 언어를 택했다. 그는 “나의 시는 전부 상황의 시”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미당의 순수시론을 반박하기도 했다.
‘절망을 커피처럼’은 좌절한 시대정신 혹은 무자비한 문명의 횡포 앞에 선 지식인의 영혼의 노래로 읽히는 시다. “빈 창자 갓갓이/ 메마른 가슴 구석까지/ 절망이 커피처럼 스미”는 아침, 시인은 “유약은 죄라고…/ 나태는 죄라고…/창밖의 저 크나큰 도시의 하늘엔/ 오늘도 진종일 먼지와 소음이/ 아라베스크로 교직될 것이고/ 그 아래서 하동댈 나 같은 사람들”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러다 끝내 시인은 “커피는 절망처럼 스미고/ 야릇한 위안 함께/ 나는 포근히 진정한다”고 했다.
그는 처녀시집 ‘풍선과 제3포복’을 내고 ‘창작과 비평’등에서 활동하다 75년 충북 단양으로 낙향, 지병인 담도암으로 숨졌다. 솔출판사(대표 임우기ㆍ문학평론가)는 이처럼 우리시단에서 잊혀진 듯 하지만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50, 60년대 시인들의 시집을 잇달아 낼 예정이다. 신동문 시인과 같은 해에 등단한 ‘휴전선’의 박봉우와 박용래, 구자운, 이한직 시인이 기다리고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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