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드골공항에서 수년간 생활한 망명자를 그린 영화 '터미널'이 개봉된 가운데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 관심을 모으고 있다.14일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국내에 수개월간 머물렀던 아프리카 출신 A(20대 후반)씨가 지난 5월께 스위스 취리히로 출국, 자신의 국가가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여권을 찢고 망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위스 당국은 "한국에 머무르면서도 난민신청을 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인정할 수 없다"며 국제 규정에 따라 출발지인 인천공항으로 돌려 보냈다.
범죄전력자 등 외국인들이 인천공항에서 억류돼 머무는 경우는 많지만 길어야 1~2주일이면 송환된다. 하지만 A씨는 여권을 찢어 버렸기 때문에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국내에 입국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이날로 121일간 인천공항에 머물고 있다. 고국의 갑작스런 쿠데타로 여권이 무효화돼 미국에 입국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터미널'의 줄거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하지만 '터미널' 주인공은 환승장을 마음대로 활보하면서 숙식을 스스로 해결하는데 반해 A씨는 환승장에 설치된 출국 대기실에서만 머무르면서 공항 당국이 제공하는 식사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출국 대기실은 입국이 거부된 외국인들이 잠시 머무는 장소로 침상 화장실 TV 샤워실 공중전화 등이 설치돼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외교채널을 통해 여권이 발급됐기 때문에 A씨가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형영 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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