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山門)이 그대로 성속(聖俗)의 경계는 아니어서, 둘이 하나라는 뜻으로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하던가. 하지만 그 '불이'의 가르침에 이르는 길이 산문에 이르는 험로에 댈 일이 아니겠기에, 속인들에게 그 문은 늘 크고 무겁다.14일 새벽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 대웅전. 하루의 가장 정갈한 빛 속에 남녀 속인들이 앉았다. 부처님의 출가 게송에 이어 스님들의 참업 진언이 이어지는 동안 속인들은 삭도기에 머리를 맡긴 채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至心歸命禮)를 빌었다. 삭발을 끝낸 예비행자들이 전나무 숲길 1.5㎞를 삼보일배하는 동안, 제1기 단기출가학교의 둘째 날은 훤히 밝아 있었다.
단기학교는 한 달 동안 행자과정 체험을 통해 내면의 삶을 들여다보도록 한다는 취지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 프로그램. 남녀 각각 26명씩 52명이 참가했는데, 10대 청소년부터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까지 다양하다. 건설회사 고위간부를 지낸 정년퇴직자, 전직교사, 주부, 학생, 고시준비생도 있다. 이들은 매일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예불과 좌선, 교육을 받고 마지막 이틀간은 철야 3,000배, 철야 용맹정진을 하게 된다.
묵언 규정 때문에 이들이 산문에 든 인연과 속내를 물어볼 길은 없지만, 출가신청서에 적힌 '인생을 새롭고 진지하게 살아보고 싶은 일념'들은 절절하다. 특히 이 가운데 남자 행자 8명과 여자 행자 3명은 정식 출가의 뜻을 밝혔다. 출가의 뜻을 굳혔으니 이제 굳이 속세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모 제약사에 다니던 홍모(32)씨는 "이제는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 수행자로서 청정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고, 프랑스에 본사를 둔 대형 유통업체를 거쳐 학원강사로 일해 온 김모(30·여)씨는 "진실로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다"고 한다. 박모(17)군은 폭넓은 배움을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입산했고, 대학교 직원이던 성모(30·여)씨는 불교 교리를 공부하다가 결심을 굳혔다
수행의 기간이 길든 짧든 이들의 출가 역시 황폐한 시대와 고단한 삶의 단편일지 모른다. 출가학교장을 맡은 정념 스님은 청나라 순치황제가 출가시 지은 시구 '…인간의 백년 삶이 삼만 육천 날이지만/ 속세 떠난 명산대찰 한나절에 미칠손가' 를 인용하며 "출가 수행은 삶의 근원적 문제에 물음이 온 몸을 휘감을 정도로 간절해야만 가능하다"고 했다. 월정사는 1기 학교가 끝나면 11월8일∼12월7일 2기 학교를 열고, 내년에는 연 5회로 상설화 한다. 수행경비는 10만원. (033)332-6664∼5
글·사진 월정사(평창)=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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