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가 13일 열린우리당 의정연구센터 요청으로 마련한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국가전략'의 화두는 '디지털'과 '소프트'이다. 소프트(soft)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과 감성, 지식이다. 제조업에만 치중할 경우 '고용 없는 성장'에 직면, 경제회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연구소측의 결론이다. 기존 개념의 농업과 같이 경쟁력을 상실한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한국인들의 유전자에 내재된 디지털과 소프트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휴대폰 교체율 세계 최고의 나라이자 한류열풍의 진원지라는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연구소는 한국을 세계 디지털의 시험장(테스트 베드)으로 만들어 국가이미지의 키워드를 '디지털'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조업의 공백은 관광 문화 오락 등 소프트산업으로 대체하고, 기존 1·2차 산업에 디지털과 소프트를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5대 전략산업과 5대 제도·인프라 구축 등 10대 국가전략의 핵심내용이다.
1. 디지털 칸(Digital Kahn)
칸은 유목국가 군주에 대한 칭호. 가상공간을 칸처럼 선점하자는 것. 한국 전체가 글로벌 디지털 시험장이 되고, 국민 전체가 시험대상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연구소, 시험 생산라인, 마케팅 등 고부가가치 라인을 유치해야 한다.
2. 네오 뉴딜(Neo Newdeal)
미국 뉴딜정책이 건설 투자였다면, 정부재정을 정보기술(IT)에 집중하자는 것. 교통·물류의 IT화로 혼잡비용도 줄이고,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홍수 등 재난관리시스템에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군을 기술·인력 양성의 전초기지이자 신기술 인큐베이터로 활용한다.
3. 소프트산업의 성장엔진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시 하드웨어 산업의 공백은 불가피하다. 때문에 지식 감성 예술 등 소프트를 산업화해야 한다. 영화·방송·음악 육성을 위해 지적재산권의 자산유동화를 도입하고, 제조업과 소프트의 결합을 위해 산업단지에 소프트기업을 입주시켜야 한다.
4. 관광산업 활성화
눈에 보이는 하드 관광자원이 반약한 게 한국의 현실. 때문에 '배용준 관광' '성형수술 관광' 등의 소프트 관광자원이 승부수다. 영화·드라마 등 문화적 역동성을 상품화해야 한다. 한국에 체류하며 중국·일본을 돌아보는 동북아 관광허브로 개발해야 한다.
5. 농업의 1.5차 산업화
'농산물=먹거리'라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eat(먹거리)'와 'entertainment(오락)'가 조화된 'eaterainment' 를 산업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1촌1CEO' 추진으로 10만명 농업 정예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6. 안팎으로 열린 세계화
기업과 사람 등 내보낼 것은 내보내 전략거점이 마련된 세계 곳곳에 '제2의 한국'을 건설하고, 의료 교육 등은 문을 열어 국내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 벤치마킹을 위해 정치인 공무원 시민단체 등 '신(新) 신사유람단'을 구성해야 한다.
7. 작지만 강한 정부
기업가형정부, 학습정부, 전자정부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부처별로 분산된 기획기능을 통합하고, 규제는 금지항목을 제외하고 포괄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제로 바꿔야 한다.
8. 글로벌 관점의 균형발전
수도권 중심의 '일극(一極) 집중형' 국토 공간구조를 '이극 경제권'(서울·인천·대전+남도권)으로 개조해야 한다. 수도권은 첨단산업의 세계 실험장으로, 남도권은 전통산업, 문화의 거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9.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
선진국이 아닌 이상 기업에 대한 직접금융 지원은 불가피하다. 은행의 영리추구는 존중하되, 공적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국적있는 금융자본을 육성해야 한다.
10. 중소ㆍ벤처기업 자생력 배가
혁신적 중소·벤처군은 미래시장 창출능력,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일반 중소기업군은 자생력을 강화시키는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 토론 이모저모
13일 열린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제언'은 열린우리당 노무현 직계 386세대 의원들 모임인 '의정연구센터'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손을 잡고 주최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이 반기업, 반재벌 성향이라는 논란이 있는 가운데 친노 성향 의원들이 기업의 이익을 대표하는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경제 정책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이날 심포지엄은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광재 의원의 기획으로 이뤄진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지난 7월 말 삼성경제연구소측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구체적 방안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고, 이에 삼성연구소측이 흔쾌히 무상으로 응하면서 성사된 것이다.
의정연은 이날 발표된 제언을 토대로 오는 15일 전경련 회장단 등을 만나 재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구체적인 규제완화 등의 정책방향을 잡아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삼성연구소측의 발표 이후 이뤄진 토론에서 장하준 캐임브리지대 교수는 '강소정부' 개념에 대해 "우리는 지금 경제에서 정부지출이 20%에 불과하지만 선진국은 교육 의료 R& D 분야에서 정부지출 비중이 높다"며 "작은 정부는 우리나라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도 "성장과 분배 등 상호가치충돌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은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일부 아이디어는 정보통신부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 부처에서는 벌떼 같은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세정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현 정부의 반재벌적 성향을 지적한 뒤, "재벌은 한국을 이끄는 주체"라며 "재벌을 한꺼번에 바꾸겠다는 것은 좋지 않은 만큼 어떻게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라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우리나라가 저성장 국면 진입했다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지만 '마의 1만 달러'라는 변곡점은 최대한 신속하게 통과해야 한다"며 "노동기득권을 축소하고 고용증대 등을 일괄 타협하는 '노사정 대협약'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했다.
고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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