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9월14일 체코의 정치가 토마슈 마사리크가 프라하 근처 라니에서 작고했다. 향년 87.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이기도 했던 마사리크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라 할 만하다. 그가 태어났을 때 체코는 오스트리아제국의 일부였고, 그가 열일곱 살 때인 1867년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협정을 맺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되었다. 철학 교수로 프라하대학에 재직하던 마사리크는 체코민족당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국회에 진출했다.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독일 등 동맹국을 한 축으로 하고 프랑스·영국·러시아 등 연합국을 다른 축으로 해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마사리크는 스위스·프랑스·미국 등지로 망명해 가며 체코슬로바키아 독립군을 조직해 연합국 편에 서서 싸웠다. 그는 전쟁 중 파리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임시정부를 조직했고, 1918년 종전의 열매로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을 얻자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작고하기 두 해 전인 1935년 건강 악화로 사임할 때까지 마사리크는 프랑스·영국·유고슬라비아 등과의 협력 속에서 독일을 견제하며 이 신생국가를 이끌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체코슬로바키아는 중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산업국가가 되었다. 조국을 독일군의 군화 밑으로 쑤셔넣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은 그에게 행운이라 할 만했다. 마사리크의 저서로는 '구체적 논리학'(1885), '체코 문제'(1895), '러시아와 유럽'(1913) 등이 있지만, 그의 정치적 견해는 작가 카렐 차페크의 '마사리크와의 대화'(1935)에 더 선명히 드러나 있다.
토마슈 마사리크의 아들 얀 마사리크(1886∼1948)는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질 때 체코슬로바키아 외무장관이었다. 그는 전쟁 중 영국에 망명해 있다가 종전 뒤 귀국해 정치를 재개했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장악한 직후 투신자살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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