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국민은행장에게 문책적 경고의 중징계가 확정된 10일. 때마침 이날 밤 우리금융지주의 LG투자증권 인수를 위한 실무 협상이 난산 끝에 타결됐다. 국민은행과 우리금융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12일 금융계에 따르면 수년간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국민은행이 최근 ‘최고 경영자(CEO) 리스크’로 지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은행권의 서열판도에 난기류가 예상되고 있다. 신한금융 우리금융 하나은행 등 ‘2인자 그룹’에 머물러 있던 경쟁자들은 “지금이 기회”라며 숨겨놓았던 발톱 을드러내기 시작했고, 통합은행 명칭을 ‘씨티’로 확정한 ‘씨티+한미은행’은 10월말을 출범 D-데이로 잡고 본격적인 공세를 준비중이다.
먼저 포문을 연 곳은 우리금융이다. 황영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지난 9일 월례 조회를 통해 “경쟁 은행들이 회계 문제와 노사 관계, 조직 개편, 통합 문제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이라며 “지금이 바로 영업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호기”라고 강조했다. LG투자증권 인수 성공, 블록 세일 성공 등으로 지주회사 체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민영화 일정에 속도를 내는 등 승승장구하는 데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의 행보도 범상치 않다. 자산 규모 2위의 신한금융지주는 최근 신한, 조흥은행의 ‘원 뱅크’ 통합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조흥은행의 카드 부문을 분사해 신한카드와 통합을 추진하는 한편, 신한생명을 자회사로 편입시켜 지주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겠다고 공식화했다. 하나은행 역시 PCA 컨소시엄의 인수 포기로 대한투신증권 인수 기회를 되살리면서 정부 측과 유리한 줄다리기를 진행 중이다. 금융계에서는 김승유 행장이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하며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 대투증권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분위기다.
물론 규모 면에서 여전히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 은행이고, 성공적인 CEO 교체가 이뤄진다면 우려하는 만큼의 경영권 공백 없이 우월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많다.
그러나, 이들 ‘빅 4’의 리딩뱅크 경쟁에 또 하나 변수는 씨티은행이다.국내 영업 규모 면에서는 ‘빅4’에 크게 못 미치지만 금리 선도력, 프라이빗 뱅킹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지금까지와 달리 이제부터의 리딩뱅크 경쟁은 규모의 경쟁 보다 질의 경쟁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 금융 당국 관계자는 “씨티은행의 진입에 따라 앞으로는 규모 못지않게 질적인 경쟁에 따라 성패가 갈릴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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