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숲 계수나무 잎이 하나씩 노랗게 혹은 불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의 그 달콤한 향기도 대기를 넘나들며 가을 아침 산책을 기쁘게 해줍니다. 벌써 1년이 지났나요? 광릉 숲에서는 동글동글 귀여운 하트형의 계수나무 잎에서 가장 먼저 가을이 오고 있음을 이야기한 것이. 그리고 이렇게 빨리 물드는 것을 고향이 북쪽이어서 고향에서 자라던 본성을 잊지 않은 탓이라고 했지요. 어찌 계수나무 뿐이겠습니까. 지금 그 나무 혹은 풀의 모습으로 그 식물의 자라는 혹은 자랐던 환경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계수나무가 사는 것보다 더 높고 추운 곳에서는 나무들이 일단 허리를 쭉 펴고 곧고 자라지 못합니다. 워낙 강력한 바람의 힘에 순응하지 못하고 높이 올려 뻗대는 것은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설사 그러고 싶어도 거듭되는 시련에 도태되었을 것입니다.
백두산 꼭대기나 그보다 더 북쪽의 툰드라에 가까운 지역의 식물들은 키를 낮추고, 여러 개체들이 모여 서로 엉키고 설켜 마치 쿠션처럼 둥글게 엉켜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 모양 같은 유선형은 바람의 저항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겠지요. 줄기는 가능하면 지면에 붙어뻗고 나가고, 잎은 가능하다면 작고 가늘게 나누어집니다.
높은 산에 가면 이 키 작은 식물들의 꽃색깔은 유난히 선명하고 화려하게 아름답습니다. 겨울이 길고 곤충이 활동하는 기간이 짧으니 그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모내려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이러한 아름다운 빛깔에 주로 관여하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는 그 쓴맛으로 인하여 식물을 뜯어 먹고 사는 초식동물들이 피하게 됩니다.
북쪽 숲을 가면 자주 만나게되는 자작나무의 그 흰빛 수피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설악산이나 백두산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나는 사스래나무도 수피가 희답니다. 러시아 문학하면 떠오르는 자작나무, 너무 신비롭고 아름다워 자작나무의 숲에선 신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진 그 자작나무의 수피가 흰 빛도 다 이유가 있답니다. 극지방에 가면 고산일수록 태양광선이 아주강하여 수피에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수피를 희게 하면 강력한 햇빛을 반사하여 나무가 받을 상처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스래나무는 1년중 성장에 사용되는 기간이 90일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 환경속에서 자라는 것이겠습니까.
어디 이 뿐이겠습니까. 잎에 털이 많은 식물을 보면 그 곳엔 바람이 강하다는 것을 짐작하셔도 좋습니다. 땅위로 낙우송의 기근이 올라오고 있다면 그 땅엔 물빠짐이 잘 되지 않는 것이구요. 같은 식물의 잎도 생장이 왕성해 열심히 광합성을 하고 있는 잎들은 초록빛이 더욱 강합니다. 주변에 있는 식물들이 온통 가시덤불이라면 그곳엔 예전에 분명 방목을 하여 동물들을 키웠던 곳일 것이구요. 소나무에 솔방울이 지나치게 많이 달리면 열악한 환경으로 위험을 느껴 본능적으로 번식을 하고자 하는 것일 겁니다.
하물며 말없이 한자리에 서 있는 식물들도 그러할 진데, 일부 정치하는 분들은 나라를 위한다며 여러 말을 하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자신들을 우선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뻔히 보입니다. 그렇듯, 말하지 않아도 진실한 마음을 품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큰 힘을 품고 있음을 우리 사람들이 알지 못 할 리가 없겠지요.
하지만 살다보니 그 진실이란 것이 제대로 알려지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 듯해서 조금씩 지쳐가는 듯도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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