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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빈 집' 베니스 감독상/비주류 감성 세계와 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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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감독 '빈 집' 베니스 감독상/비주류 감성 세계와 통하다

입력
2004.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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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6시 30분(현지 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61회 베니스영화제 폐막식에서 “감독상에 ‘빈 집’, 김기덕”이라는 호명을 들은 김기덕 감독은 먼저 객석에 함께 앉아 있던 임권택 감독에게 모자를 벗어들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이후 시상대에 오른 그는 “제가 지금 인사 드린 분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 받고, 가장 오랫동안 영화를 만드신 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감독상 수상으로 한국영화가 올 한 해 세계 3대 영화제 주요부문에서 모두 수상기록을 낸 이 날은 김기덕 감독에게도 한국영화계에도 역사에 남을 날이었다.

김기덕이기에 가능한 쾌거

지난 2월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사마리아’) 수상의 감격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빈 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까지 거머쥔 김기덕 감독. 비주류, 저예산, 가학 영화라는 국내 영화계와 관객들의 비난과 외면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고집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그의 독특한 주제의식과 형식은 저예산영화가 가진 완성도 부족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2000년 ‘섬’, 2001년 ‘수취인불명’이 베니스 경쟁부문에, 2002년 ‘나쁜 남자’가 베를린에 진출하는 등 지금껏 다섯 차례나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급기야 올해 두 영화제 감독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는 세계 영화사에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세계 3대 영화제는 경쟁부문에 같은 영화를 초청하지 않는데다, 한 해에 여러 작품을 찍어 각각 다른 영화제에서 출품할 수 있는 정열적인 감독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 작품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작품에 들어가 1, 2개월 내에 촬영을 마치는 김기덕 만이 가능한 일이다. 96년 데뷔해 8년 동안 그가 내놓은 작품은 무려 11편.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그의 다작은 언론의 관심을 모았고, 그는 “직업이 감독이니 직장 다니는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말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김기덕에게 계속되는 관심

김기덕 감독은 ‘빈집’으로 국제영화평론가연맹상과 세계가톨릭협회상, 미래의 비평가상 등 비공식 부문에서도 3개 상을 차지했다.

부랑자(‘악어’), 혼혈아(‘수취인 불명’), 살인자(‘섬’), 포주(‘나쁜 남자’) 등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의 영화는 국내에서는 늘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논쟁의 한 가운데 있다. 베를린 영화제 수상 이후에도 그를 ‘기인’ 취급하는 시선은 여전했다.

그러나 해외에서 김기덕은 다르다. 그에 대한 호감은 영화의 주제의식과 독특한 미장센에 동양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이상이었다. 영화제 수상만이 아니라 전작인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미국 흥행성공이 이를 말해준다. 이번 ‘빈 집’ 시사회에서도 관객들은 “유머나 사랑을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후반 영화가 시적(詩的)으로 변해가는 것이 좋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영화제의 심사위원로 참석한 ‘네멋대로 해라’ ‘말콤 엑스’의 미국 스파이크 리 감독은 시상식 후 김감독을 따로 만나 ‘빈 집’의 리메이크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제 강국 한국, 그 이유는?

베니스 영화제 수상으로 한국영화는 국내에서는 한 작품당 관객 1,000만 명 시대,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극찬에 이어 세계영화제에서도 강자가 됐다. 한국영화는 90년대 말부터 해마다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고 있으며, 2002년 ‘취화선’으로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오아시스’의 이창동과 ‘올드보이’의 박찬욱 등 매번 주요 부분에서 수상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해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은 우리보다 먼저 이들 영화제에 진출한 일본, 중국, 대만, 이란 등 아시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아시아 국가의 경우 수상이 일부 대표 감독에게 집중되는 것과 달리 한국영화는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등 수상 감독군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는 평가이다.

11일 시상식 후 열린 수상자 기자회견에서도 이 같은 한국영화 강세의 이유를 궁금해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올드보이’를 언급하며 한국영화의 발전 이유를 묻는 한 외국 기자의 질문에 대해 김기덕 감독은 “한국영화가 많이 해외에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한국영화를 국제영화제나 해외시장에 소개해 주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빈 집'/ '마음 빈 사람들' 따뜻해진 시선으로 담아

김 감독은 "'빈 집'을 비어 있는 우리의 마음에 관한,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관한 영화다." 라고 밝혔다. 영화는 남편의 폭행에 시달려 황폐해진 선화(이승연)의 집에 빈집만 골라 다니는 한 남자 태석(재희)이 찾아들면서 서로의 마음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김 감독의 전작이 폭력적이고 다소 기괴했던 데 비해 '빈 집'에는 자극적인 화면이나 단 한 번의 정사 장면도 없다. 폭력 수위도 낮아져 영화의 말미에 직설적인 폭력묘사 대신 태석이 골프채로 선화의 남편에게 골프공을 날리는 모습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나쁜 남자' 등을 통해 반여성주의적 감독으로 낙인 찍혔던 그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도 비교적 능동적으로 그렸다는 평이다. 전반적으로 따뜻해진 시선과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하려는 감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줄곧 별 대사 없이 이어지지만 유부녀가 외간 남자를 집 안에 들인다는 등 호기심 가득한 설정과 진행 덕에 지루하지도 않아 베니스 영화제에서도 현지 데일리(일일 소식지)의 별점 평가에서 내내 정상권을 차지했다. '빈집'은 또한 위안부 누드 파문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이승연의 복귀작이기도 하다. '피아노맨'(1996년) '미워도 다시 한번'(2002년) 외에는 이렇다 할 출연작이 없던 이승연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베니스영화제의 레드 카페트를 밟는 영광까지 얻었다. 그렇다고 이번 수상이 그녀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분분하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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