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 고엽제, 실명…. 한 집안이 연이어 겪었으리라고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불행을 딛고서 3대가 성실히 군 복무를 마친 류범열(30ㆍ대구 동구 율하동)씨 가족이 병무청이 올해 처음 선정한 ‘병역이행 최고 명문가’에선정돼 10일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류씨 가족을 포함한 병역이행 명문가 40가족은 신체를 훼손하거나 소변 조작 등 상상을 초월하는 수법으로 군 복무를 피하는 일부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3대가 국가유공자인 류씨 집안의 자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슬픈 가족사는 한국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씨의 할아버지 류기태(1920년생)씨는 1950년 낫 대신 총을 들고 육군에 자진 입대해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나 2개월 만에 전사했다. 기억도 희미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조국에 바쳤던 류씨의 아버지 류근영(1944년생)씨는 21세이던 65년 1월 입대한 후 10월 베트남전에 파병됐다.
그는 죽을 고비를 수차례 맞는 고난 속에서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고엽제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병마와 싸우다 결국 2002년 6월 숨을 거뒀다. 97년 12사단 통신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하다 차량 배터리 폭발 사고로 왼쪽 눈을 잃고 의병 전역한 류씨까지 군과이 집안의 ‘악연’은 계속됐다.
불행은 대를 이어 단란한 한 가정을 뒤흔들었지만 류씨 가족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BBQ 대구 동부지사에서 근무 중인 류씨는 “아버지는 고엽제로 평생을 고생했지만 항상 당신이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셨다”며 “군대 가서 당신과 아버지, 아들이 죽고 다치고 했어도 한번도 원망한 적이 없으셨다”고 말했다.
류씨의 아내이자 이 집안의 큰 며느리인 김소희(27)씨 역시 첫 휴가도 나오지 못한 신병이었던 친오빠를 95년 훈련 중 사고로 잃었다. 그러나 김씨는 “미래에 태어날 2세에게 전쟁의 아픔을 또다시 물려주고 싶지는 않지만 남들이 다 가는 군대를 피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류씨의 친동생 승보씨와 사촌동생 2명, 작은아버지도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 가족 7명의 전체 군 복무기간은 162개월에 달한다.
병무청 관계자는 “학식이 높고 재산이 많아도 국가와 사회에 비겁한 행위를 한 사람의 가문을 명문가라 부를 수 없다”며 “숭고한 애국심으로 대를 이어 국민의 도리를 다한 이들이야말로 나라의 귀감”이라고 평가했다.
김정호 기자 azu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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