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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잿빛 도심속 작은 푸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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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잿빛 도심속 작은 푸르름

입력
200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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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도심 속 지상 4층 빌라의 옥상이다. 양지 바른 한쪽 아담한 화단 옆으로 화분 10여 개도 가지런히 놓여 있다. 늘 비워두는 게 아까워 등짐을 진 후 벽돌 울타리를 만들고 흙을 채워 씨앗을 심은것은 올 봄이었다.첫 시금치 씨앗을 뿌린 뒤 두근거리는 설레임의 시간이 지난 어느날, 마치 요술처럼 나타난 그 초록의 신비함이란….며칠 전 피망을 걷어낸 곳에 파종한 열무 떡잎 두 개가 세상 밖으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영롱한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는 상추 잎에서는 싱싱함이 묻어나고, 하늘을 향해 기세높인 줄기에는 아기 오이들이 도란거린다.

또랑또랑 앙증맞은 방울토마토가 분홍으로 익어가고, 그 옆에서 빨간 봉숭아와 수줍음 많은 채송화가 피어난다. 도심에선 보기 어려운 멋쟁이 호박벌도 자색의 가지꽃에 얼굴을 묻고 이제 막 알이 차기 시작한 빛 고운 석류도 탐스럽다.

비온 뒷날 나팔꽃과 국화 잎 위에 고동달팽이의 나들이가 시작되면, 열매 세 개를 맺은 무화과나무는 여름내 모아둔 양분의 무게에 힘겨워 한다. 올해는 꽃밖에 피지 못한 키 큰 감나무에 매미가 가을이 가까이 왔음을 목청 높여 알리니, 그 아래 포도나무에는 고추잠자리 한 쌍이 사이 좋게 앉아 있다.

옛 농부의 말에 “곡식은 밭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여물어간다”고 했던가. 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의 하굣길을, 나의 퇴근길을 재촉한다.

식물도 사람과 같은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해 주면 좋아하고, 무관심하면 토라지고. 수확한 빨간 고추와 풋고추는 앞집과 나눈다. 자연과 멀어지는 도시의 일상에서 네 평의 아름다운 옥상 정원은 어느덧 마음의 고향이 된다.

/박명식ㆍ서울 구로구 오류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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