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와 격리된 조사실에서 검사의 신문에 답하고 서명한 내용은 무조건 유무죄 판단의 증거가 되어야 할까.법원이 수십년간 인정해온 검찰 신문조서의 증거능력(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자격)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에 나섰다. 대법원은 16일 이 같은 주제를 갖고 공개변론을 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기존 판례를 변경할지 판단하겠다고 9일 밝혔다.
서면심리로만 유무죄를 가리는 대법원이 공개변론을 갖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판례가 바뀔 경우 그 만큼 큰 파장이 예상된다는 의미다. 이번 공개변론은 지난해 12월 여성 종중원 인정 여부를 다툰 민사재판에 이어 두번째이며 형사 사건으로는 처음이다.
공개변론에서 다뤄질 사건은 교통사고를 당한 피고인이 의사와 짜고 진단서를 조작해 과다한 보험금을 타냈다는 사기 사건. 1, 2심에서 검찰 조서가 증거로 인정돼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은 "의사와 보험사 직원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사실과 달라 법정에서 부인했는데도 재판부가 이를 유죄의 근거로 인정했다"며 상고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법정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는 식의 '전해 들은' 진술은 원칙적으로 증거에서 배제토록 하고 있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도 당사자가 재판에서 부인하면 증거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검사가 작성하고 진술자가 서명한 신문조서에 대해서는 비록 당사자가 법정에서 이를 부인해도 증거로 인정해왔다. 본인이 확인하고 서명했다는 '형식적 진정성'만 입증되면 나머지 '실질적' 진정성도 인정된다는 논리로, 법관과 동일한 자격을 갖춘 검사의 '전언'은 신뢰할 만 하다는 게 그 근거였다.
대법원은 수차례 판례를 통해 이를 확인해 왔고 헌법재판소도 1995년 이 같은 예외조항을 담은 법률(형소법 312조 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오랜 관행에 대해 대법원이 재검토에 나선 이유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법정에서 제시된 증거와 진술을 중심으로 유무죄를 판단하자는 법원의 '공판중심주의' 방침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이 무조건 인정되다 보니 검찰 수사가 객관적 증거보다는 회유나 강압에 의해 자백을 얻는 데 치중해왔다는 비판이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할 경우 더 이상 검찰조서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돼 수사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러나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배제하면 피의자들의 진술 번복 등 수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반대논리도 만만찮아 대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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