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만(구속) 전 한솔 부회장에게서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7년 만에 다시 검찰에 소환된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는 애써 태연하려 했으나 또다시 피의자 신분이 된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 듯 이내 굳은 표정으로 변했다.8일 오전 10시 검은색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서울중앙지검 청사에 모습을 나타낸 현철씨는 짙은 청색 계통의 양복에 푸른색 줄무늬 넥타이를 맨 깔끔한 차림이었다. 여상규 변호사와 함께 청사 현관에 들어선 그는 "7년 만에 소환된 심경을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검찰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짧게 말하고 곧장 10층 조사실로 올라갔다.
문민정부의 '소(小)통령'으로 불렸던 그는 1997년 5월 각종 이권청탁 등과 관련해 3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5개월여간 수감생활을 했었다.
현철씨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조씨한테서 받은 20억원의 성격에 달려 있다. 검찰은 조씨가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의 부탁을 받고 지난해 2∼12월 한번에 2억∼3억원씩 9차례에 걸쳐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조씨의 진술대로라면 현철씨는 구속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돈을 받을 당시 17대 총선을 준비하던 신분이었고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10억원 이상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자에게는 예외 없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하지만 현철씨측은 이 돈이 조씨에게 맡겼던 70억원에 대한 '뒤늦은 이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철씨는 92년 대선에서 쓰고 남은 비자금 등 70억원을 조씨에게 맡겼다가 99년 8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돈을 되찾았다. 그는 검찰 수사 때 국가와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쓴 각서에 따라 이 가운데 43억원은 벌금과 추징금, 세금 등을 내는 데 쓰고 나머지 27억원은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
여 변호사는 이날 "현철씨가 구속된 97년부터 사면된 99년까지 30개월에다 월 1%의 이자 7,000만원을 곱하면 20억원이 된다"며 "그때 받지 않은 이자를 뒤늦게 받은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사팀은 70억원에 대한 포기각서까지 썼던 그가 4년이나 지난 지난해 이자를 챙겼다는 주장을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은 현철씨가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면 김 전 차장과 조씨를 불러 3자 대질신문도 하겠다며 사법처리에 대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결국 현철씨가 구속을 면하게 되더라도 다시 한번 법정에 서는 운명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