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이 극한적 대결로 치닫고 있다. 내부 이견이 있던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무조건 폐지로 기울면서, 문제조항 개정을 고수하는 한나라당과 대치전선이 분명하게 형성됐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은 이 문제를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세력 끼리 힘겨루기로 결판 내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한층 근본적인 의문은 대통령이 앞장서 극한적 논쟁을 이끌어야 할만큼 화급한 국가 현안인가 하는 점이다.첫번째 의문은 정부여당과 시민단체들이 체제와 이념 문제에 원초적 결정권을 지닌 국민의 뜻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행태에서 비롯된다. 모든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는 인권침해요소를 없애는 법 개정 쪽을 지지한다. 폐지 여론은 훨씬 적다. 폐지론의 명분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이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헌재와 대법원의 헌법적 판단을 한갓 수구적 의견으로 치부하는 것도 그렇지만, 국민 다수의 뜻마저 무시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폐지론은 이 법이 악용된 그릇된 과거를 청산, 올바른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보법 개폐처럼 헌법질서와 직결된 문제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우리사회의 평균적 가치관, 공동체의 합의에 바탕해야 한다.그것이 무릇 모든 법의 사회통합 목표에 충실한 선택이다. 국보법 폐지가 궁극적 이상일지라도, 사회적 합의 없는 강행은 사회통합에 역행하는 것이다.
정부가 반대여론을 설득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국회 다수의석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국민참여를 표방한 대의를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여론을 편한 대로 끌어대는 시민단체와 언론도 시민의 정치참여가 원래 뜻하는 바를 되새겨야 한다. 훌륭한 명분을 위해서는 여론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위험하고 독선적이다.
국민 다수가 바라는 것은 법을 고치든 새 법을 만들던 간에 최소한의 체제안전장치는 남겨두는 것이다. 그것이 막연한 불안감에 근거한 것일지라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정부의 의무다. 이를 외면한 채 일단 폐지하고 보자고 서두르는 정부여당은 과연 국보법 폐지가 이토록 심각한 사회적 분란을 무릅써야 할 만큼 시급한 국가 현안인지부터 국민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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