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4년 9월8일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가 레지오에밀리아에서 태어났다. 1533년 페라라에서 졸(卒). 이탈리아 르네상스기 문학에서 아리오스토는 흔히 마테오 보이아르도(1441∼1494)와 묶여 거론된다. 아리오스토의 대표작인 서사시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 1516)가 보이아르도의 서사시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Orlando innamorato: 1476∼1483)의 후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두 시인은 또 그 시절 페라라 지역의 문화·예술을 지원하던 에스테 후작 집안에 차례로 몸을 의탁하기도 했다.보이아르도의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와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는 11세기 프랑스 무훈시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를 새롭게 쓴 것이다. 오를란도는 샤를마뉴대제의 무장(武將) 롤랑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778년 8월15일 스페인 원정에서 돌아오던 샤를마뉴대제가 피레네 산맥에서 사라센군에게 패배한 사건을 소재로 삼은 '롤랑의 노래'는 그 뒤 유럽에서 수많은 기사도(騎士道) 이야기의 원천이 되었다. 보이아르도와 아리오스토는 자신들의 서사시를 통해 신심 깊은 전사(戰士) 이미지가 강했던 롤랑에게 나약한 연인 이미지를 짙게 입혔다. 특히 아리오스토는 '광란의 오를란도'에서 롤랑의 비극적 연애에다가 자신이 의탁하던 에스테 집안의 선조 루지에로의 모험적이고 성공적인 연애담을 보탬으로써 후원자의 후의에 보답했다.
롤랑과 오를란도의 예에서 보듯, 유럽어에서는 역사적·신화적 인물들의 이름을 각자 제 나라식으로 부르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망디공 윌리엄은 프랑스에서는 기욤, 독일에서는 빌헬름, 이탈리아에서는 굴리엘모, 스페인에서는 기예르모가 된다. 물론 근대 이후의 영국인 윌리엄이라면 어디서나 윌리엄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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