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베슬란 제1학교 인질극 사건 초기 인질 수를 고의로 축소발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곤혹스러운 입장으로 몰리고 있다.러시아 당국은 사건 초기 인질 수를 250여명으로 발표했는데 실제로는 1,500명에 이른 것으로 밝혀졌다. 왜 축소 발표를 했고, 누가 축소 발표하도록 지시했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데도 러시아 정부는 전전긍긍하며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국의 이 같은 사건 축소에 극도의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베슬란 시 주민들은 진압 직후 현장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베슬란 주민이 러시아 당국의 인질 수 축소가 처음부터 사태의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뤄진 책략으로 보고 있다는 생생한 증거였다. 러시아 당국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테러와는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푸틴 대통령의‘대(對) 테러정책’에 맞춰 처음부터 무력진압에 의한 사태 해결을 염두에 두고 인질 수를 축소 발표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던 러시아 언론들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일간 코메르산트는 6일 "크렘린이 이번 참극의 원인을 국제 테러리즘으로 돌리는 것은 테러로 초래되는 자국민의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속셈"이라며 "어린아이들이 희생된 것이 10년간 계속된 체첸 내전이 아니라 국제 테러리즘 때문이라는 얘기가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유력 일간지는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는 "이번 사태의 책임은 푸틴 대통령과 연방보안국(FSB), 내무부가 져야 한다"고 푸틴을 직접 겨냥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5일 인질사태의 발생과 진압 과정 등 전모를 공개할 것을 촉구했다. EU 의장국인 네덜란드의 벤 보트 외무장관은“테러는 전 세계의 문제”라며“러시아 정부가 테러 진압의 구체적인 과정과 사후 평가를 진솔하게 설명하고 국제사회와 협력을 할 때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정부가 테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공식 시인했지만 그정도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면서 무력진압을 강행한 부담을 덜어내지는 못할 전망이다.
장학만 기자 loca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